황병기의 가야금 연주를 듣는다. 밝은 빛이 외려 마음의 습기를 우려내고 찬바람이 그 위를 덮쳐 냉기를 황금빛으로 결빙시키는 겨울 한낮. 수사가 지나쳤을까. 이런 수사를 구사하게 하는 마음이 기쁨에 차있는 건지 슬픔에 달아오른 건지 스스로 헷갈린다. 하여튼, 무명실을 꼬아 만든 열두 줄의 울림이 그런 불가해 한 정념을 도발한다. 이 청아한 듯 둔탁하고 어두운 듯 상쾌한 소리를 글로 표현해보려 한 적 있다. “덩기덕 두루두릉 꿍 따~” 뭐, 이 정도였다. 읽어보면 당연히 본래 그 소리가 아니다. 유현한 장단까지 고려하면 마음을 치고 들어왔던 그 소리의 물성은 차마 말로 표현 가능한 게 아니다. 음악을 예술의 최고 경지라 칭송하는 건 흔한 일이지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감정 그대로 솔직하고 숙연하게 받아들이게끔 하는 소리의 미감 앞에서 언어는 무기력해진다. 논리적 이해나 정황 설명 따위로 누군가를 설득케 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 좋은 감정, 솔직한 감정이란 말의 허식이 짐짓 무용해질 때 비로소 상대에게 가 닿는다. 그럴 때 작용하는 게 바로 리듬과 음색이다. 시쳇말로 서로 장단이 맞는다, 는 말은 그렇게 나왔으리라 본다. 장단 맞는 연주자들은 상대의 옷깃만 보고도 전체 화음을 탈 줄 안다. 가야금 소리를 듣는다. 누군가에게 진심을 말하고 싶을 때, 어떻게 마음의 소리 그대로를 들려줄 수 있을까 고심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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