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대폭 줄고 납품가도 떨어져
울산 거제 등 하청업체 폐업 속출
조선업 불황의 여파가 협력업체 전반을 휩쓸고 있다.
지난해 3분기까지 국내 조선업계 ‘빅 3’인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의 영업손실액은 9조원에 달했다. 전년도 누적분을 포함해 이 기간 회사별로는 현대중공업이 3조2,000억원, 삼성중공업이 1조5,320억원, 대우조선해양이 4조3,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우조선해양에는 4조원대 공적자금 투입이 결정됐고, 3개 사는 자체로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다.
모기업 사정이 어려워지자 협력업체에 공사 대금으로 지급하는 기성금을 대폭 삭감, 협력업체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급기야 최근 울산에서는 현대중공업 한 사내협력업체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했다.
지난달 17일 오전 울산대병원 주차장에서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업체 사장 서모(63)씨가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차량 안에서 번개탄이 발견됐고, 서씨의 주머니에는 “기성금이 적어 힘들었다”는 내용의 자필 유서가 발견됐다.
사정을 잘 아는 협력업체 관계자들은 반발했다.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를 운영하다 폐업한 대표 21명으로 구성된 현대중공업 협력사 대책위원회는 지난달 21일 울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데 이어 가두 선전전 등 공동대응에 나섰다.
대책위 소속 신문수(60)씨는 “현대중공업은 하청업체에 대한 하도급 계약서를 공개해야 한다”며 “협력업체들은 원청과 도급계약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신씨는 또 “현대중공업의 일방적인 기성금 삭감 때문에 협력업체 사장이 자살하고 회사는 파산, 하청노동자는 빚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협력사 대책위에 따르면 올해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업체 300여곳 중 64곳이 폐업했고, 하청 직원 1,600명이 110억원에 달하는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기성금 삭감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도급계약은 근로자 1인에 대한 계약금이 아니라 사업에 따른 전체 계약금이고, 애초 계약시점에 협의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지만, 기성금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양대 조선소가 사실상 지역경제를 끌고 가는 경남 거제시의 사정도 비슷하다.
2차 협력업체인 태원기업 대표 임광조(54)씨는 “잘 나갈 때는 매달 평균 2,500톤 규모로 일감을 받았지만 최근에는 700~800톤으로, 종전 일감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며 “납품 단가는 종전보다 20~30% 가량 떨어졌다”고 하소연했다. 태원기업은 선박 블록 제작에 필요한 발판과 가설기자재를 설치하고 철거하는 소규모 업체로,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에 속한 1차 협력업체에서 다시 일감을 받고 있다. 임씨는 최근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직원 임금을 지급하려고 각종 대출에 사채까지 끌어 쓰고 있는 상황”이라며 “주변 협력업체 대부분이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협력업체는 원청인 대형 조선사와 달리 마땅한 자구책을 세울 수도 없어 줄도산 우려까지 나온다. 하창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은 “협력업체의 자구책이라면 남들과 다른 독보적인 기술력일 것”이라며 “그러나 당장 이번 달 월급도 지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앞을 내다보고 기술개발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조선업 협력업체들의 인건비는 대부분 기성금의 70~80%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울산ㆍ거제=정치섭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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