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1월 11일
1964년 1월 11일 미국 공중위생국장 루터 테리(Ruther Terry)의 보고서 ‘흡연과 건강’이 발표됐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주식시장 충격을 덜어 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일요일자 신문들은 보고서 내용으로 주말판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요지는 “흡연이 폐암 발병률을 10~20배 증가시키고 기종과 심장병과도 관련이 있다”는 거였다. 이른바 ‘테리 보고서’는 결과적으로 20세기 보건 관련 최대 뉴스 가운데 하나가 됐다.
테리 보고서가 흡연 유해성을 밝힌 첫 문건은 아니었다. 흡연 경험자와 보건 전문가들의 경고가 나오기 시작한 건 훨씬 전부터였고, 의학 사례보고서도 50년대 중반부터 발표되곤 했다. 57년 미국 병리학자 오스카 오르바흐와 역병학자 리처드 돌의 공동 연구보고서가 나왔고, 62년 3월에는 영국 왕립외과협회도 흡연의 위험을 알리는 보고서를 냈다. 모두 흡연과 폐암 심혈관 질환의 연관성을 밝히는 내용이었다.
담배 업계는 그 때마다 조직적인 반격에 나섰다. 신문 광고 등을 통해 보고서의 허점을 공격하며 흡연 무해성을 홍보했고, 필터의 성능을 과장했다. 흡연자들도 달갑잖은 보건 보고서보다는 자신들의 행위에 위안을 주는 담배 회사 발표가 더 솔깃했을 것이다. 저 치열한 공방전에 미국 공중위생국이 공식적으로, 또 공개적으로 개입한 거였고, 보고서는 공개재판의 첫 판결이었다.
갓 취임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지시로 공중위생국장 루터 테리는 자신을 포함 10명의 중립적(절반이 흡연자) 인사들로 위원회를 구성했다. 62년 11월부터 7,000여 편의 관련 논문과 연구 자료를 분석했다. 보고서가 나오기까지 암 학회 등의 금연 진영과 담배 회사의 로비ㆍ홍보전도 끊이지 않았다.
보고서 발간 후 석 달 사이 담배 소비는 무려 15%가 줄었다. 연방거래위원회는 그 해 6월 담배 포장지에 위해성 경고문구를 넣도록 의결(시행은 65.1.1부터)했고, 65년 7월부터는 담배 광고에도 같은 조치가 내려졌다. 67년 연방통신위원회는 모든 TV 라디오 방송의 금연공익광고 방영을 의무화했고, 71년 담배 광고를 금지했다.
테리 보고서 이후 흡연의 해악을 폭로하는 보고서들이 헤아릴 수 없이 나왔고 연관 질병의 범위도 확산됐다. 테리 보고서 발간 50주년이던 2014년 미 공중위생국은 미국 성인 흡연율이 65년 42%에서 2012년 18%로 줄었지만(질병예방통제센터 집계 지난해는 16.8%), 매일 18세 미만 청소년 3,200여 명이 흡연을 시작하고 2,100명이 중독자(daily smoker)가 된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성인 흡연율은 조사 주체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2014 지역사회 건강조사’ 보고서 기준으로는 약 24%(남성 약 42%)다. 지난해 정부는 흡연율 감축을 명분으로 담배세를 2배 이상 인상했다. 금연 효과는 아직 예단할 수 없지만 당국의 기대(8%포인트 감축)에 못 미칠 건 확실해 보인다. 반면 세수는 전년비 64% 늘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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