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영남 유권자들이 여당인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호남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자를 지지한다고 말한다. 또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가 다른 후보를 지지한다거나, 진보ㆍ보수 성향에 따라 지지 후보가 달라진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경향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도 존재할까. 정답은 ‘그렇다’이다. 하지만 그 경향은 한국과 조금 다르다.
일반적으로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크게 두 가지 선택을 한다. 첫째는 투표 참가여부이고, 둘째는 투표를 한다면 누구에게 투표하느냐다. 미국에서는 많은 학자들이 두 가지 선택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해 왔다. 여기서는 공식 선거결과와 전미선거연구(American National Election StudiesㆍANES)로 대표되는 여론조사 등에서 나타난 미국 대선의 전체적인 경향을 다루고자 한다.
누가 투표 하는가
미 대선에는 50~60% 정도 유권자들이 실제 투표한다. 연령, 교육수준과 주거조건 등이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연령은 한국에서도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인데, 2012년 미 대선에서는 25세 미만은 41%만 투표한 반면 65세 이상 유권자들은 71%나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고학력 유권자들의 기권 비율이 높지만 미국은 정반대다. 고졸 미만 유권자들은 40%만 투표한 반면, 대학원 이상 학력을 가진 유권자들은 81%가 투표를 했다. 주거 조건은 미국만의 독특한 현상인데, 주택을 소유한 유권자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20% 포인트 정도 높은 투표 참가율이 높다.
미 대선에서는 누가 투표를 하느냐 문제가 정치학자들뿐만 아니라 민주ㆍ공화당 양당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나이가 어릴수록,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그리고 남의 집에 세를 들어 살수록 선거에서 기권할 가능성이 높은데, 대개 민주당 지지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그 원인으로 미국에 존재하는 유권자 등록 (Voter Registration) 제도를 지목한다. 주민등록제도가 없는 미국에서는 실제 투표를 하기 위해 먼저 자신이 유권자라는 사실을 주(州) 정부에 등록해야 한다. 이런 등록이 비교적 쉬운 주와 그렇지 않은 주의 투표율은 극명히 대비된다. 예컨대 투표를 하면서 유권자 등록을 같이 할 수 있게 되어 있는 미네소타나 위스콘신 주는 각각 76.4%와 72.9% 투표율을 보여 2012년 미국 전체 투표율(58.6%)에 비해 상당히 높았다. 민주당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유권자 등록을 용이하게 하여 지지자들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개혁안을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공화당은 유권자 등록 시 사진 있는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토록 강제하는 등(일명 Voter ID Law) 민주당과는 정반대 개혁안을 추진하고 있다.
누구에게 투표하나-(1)정당 일체감
그 동안의 연구에서 유권자가 누구에게 투표하는가는 ‘정당 일체감’(Party Identification)이 가장 중요하다고 확인됐다. 한국에서는 비교적 최근에서야 생겨난 경향인데, 특정 정당에 대해 심리적으로 의존해 선거뿐 아니라 정보수집, 정책 지지여부 등 정치와 관련된 제반 모든 사항을 결정하는 걸 뜻한다. 어린 시절 부모의 정당 선호에도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번 형성되면 비교적 오랫동안 변치 않고 여러 선거 기간에 걸쳐 지속된다. 또 이런 소속감은 종교적 신념과 유사해 자신이 속한다고 믿는 정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강화되는 경향이 크다. 그 정당의 추진 정책이나 소속 후보에 대해서 거의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게 된다.
예컨대 갤럽 여론조사에서 별로 당파적이지 않은 ‘연방 정부가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에 즉각적 위협이 된다고 생각합니까’라는 설문을 여러 시기에 실시했는데, 그 결과가 2006년과 2010년 극명하게 대비됐다. 조사 결과(도표 참조)에 따르면, 2006년 9월 공화당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일 때에는 민주당 유권자의 57%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공화당 유권자는 21%에 불과했다. 2010년 9월 민주당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일 때에는 정반대로, 민주당 유권자는 21%만 ‘그렇다’고 답한 반면 공화당 지지자는 66%가 ‘그렇다’고 답했다. 일체감을 느끼는 정당 출신이 대통령이냐 아니냐에 따라 정부 자체에 대한 신뢰까지 바뀐 셈인데, 개별 정책에 대한 지지여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정당 일체감은 선거에서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에도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2012년 미국 대선에서는 자신이 민주당에 소속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유권자의 92%가 오바마 후보를 지지한 반면, 자신이 공화당에 소속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유권자의 93%가 밋 롬니 후보를 지지했다.
미국에서는 특정 정당에 소속감을 가지고 이와 같이 일방적 투표성향을 보이는 유권자가 전체 유권자의 80%~85%나 차지하고 있다. 고작 15% 남짓의 무당파 유권자들이 존재할 뿐이다. 이는 한국에서 흔히 중도성향 혹은 부동층으로 불리는 비율이 30% 이상인 것과는 큰 차이다. 더구나 진보ㆍ보수와 같은 이념이나 소득수준과 같은 개인의 이해관계가 특정 정당에 대한 소속감에 영향을 미친다고는 하지만, 유권자 본인이 실제로 생각하는 자신들의 이념이나 소득 수준보다도 더 과도하게 정당일체감이 대선을 비롯한 미국 정치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미국 정치학계의 일반적 견해이다.
다시 말해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자신에 대해 중도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정책에 대한 지지 여부나 선거(특히 대선)에서는 과도할 정도로 ‘정당 일체감’에 부합하는 방향에 치우쳐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민주ㆍ공화 양당간의 정책적 간극은 점점 벌어지고 각 정당 내부의 결집력은 강화되는 현상이 심화되어 가고 있다. 이를 ‘정당의 양극화’(Party Polarization)라고 부른다. 따라서 지금은 민주당의 클린턴이 후보가 난립한 공화당의 그 누구보다 압도적 우위를 점하는 것 같지만, 실제 본선에서 맞대결이 시작되면 2016년 대선도 결국 박빙 승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누구에게 투표하나-(2)정책이슈의 제한적 영향력
물론 많은 유권자들이 정책 이슈에 관심을 보이고, 이런 대선에 중요한 영향을 미쳐왔다. 예컨대 현직 대통령이 여러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느냐 여부가 재선에 일정 정도 영향을 미쳤으며 이를 ‘회고적 투표’(Retrospective Voting)이라고 부른다. 1984년 로널드 레이건, 1996년 빌 클린턴,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경기 회복을 인정받아 재선에 성공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반면 1980년 지미 카터, 1992년 조지 H. 부시 대통령은 경제 정책에 실패해 재선하지 못했다. 또 대통령이 된 뒤 어떻게 하겠다는 약속에 기반해 당선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전망적 투표’(Prospective Voting)라고 부른다. 오바마 대통령이 2008년 처음 당선될 때 많은 유권자들은 변화에 대한 약속을 지지했다.
정책 이슈가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양상은 복잡하다. 최저임금 수준이나 낙태 허용범위 등 대다수 정책 이슈는 어느 정도가 적정한 지에 대해 후보자들 사이에 견해가 엇갈리게 마련이다. 이를 ‘공간적 이슈’(Spatial Issue)라고 부르는데, 문제는 실제 선거를 치르는 동안 후보자들은 대개 자신의 견해를 모호하게 얘기하게 된다. 반면 테러리즘 대응책, 범죄예방 등의 소위 정답이 존재하는 경우는 차이를 발견하기 힘든데, 이를 ‘합의쟁점’ 또는 ‘가치쟁점’(Valence Issue)’이라고 한다. 두 이슈 모두 유권자 입장에서는 후보자간 차이를 찾기 힘들기 때문에 대개는 정당일체감에 기반하여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의 정책 이슈를 과도하게 정당화하고 상대 후보의 이슈는 과도하게 폄하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누구에게 투표하나-(3)후보자의 자질
마지막으로 간과할 수 없는 요소는 바로 후보자 개인의 특성과 자질이다. 인종, 종교, 성별, 출신 지역, 그리고 사회적 배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후보자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미국 유권자들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이미지의 사람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2008년 대선에서 흑인들이 오바마를 강하게 지지했던 것이나, 공화당이 여성을 부통령 후보로 내세운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박홍민 교수는
2001년 서울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2004년 같은 곳에서 정치학 석사를 받았다. 2010년 워싱턴대(세인트루이스 소재)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2010~2014년 앨라배마대 교수, 2014년부터 위스콘신대(밀워키)에서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의 정치제도(의회ㆍ대통령ㆍ정당)에 대해 연구ㆍ강의하고 있다. ‘The Politics of Conciliation: Resolving Inter-cameral Differences in the U.S. Congress’ 등 2개의 저서와 8편의 학술 논문을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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