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길을 제도화한 연명의료에 관한 법률안, 이른바 웰다잉 법안이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연명의료란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생 가능성이 없으며 증상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환자, 즉 임종기 환자에게 치료효과 없이 단지 임종 과정만을 연장할 뿐인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 의학적 시술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2018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이 법은 말기에 이른 환자 본인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의료기관에서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거나, 사전에 의향서를 미리 작성해 둔 경우 담당의사의 확인과정을 통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였다. 환자의 의사를 직접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엔 미성년자인 환자의 법정대리인이 연명의료 중단 결정의 의사를 밝히거나, 환자가족 전원이 합의를 하면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 후 결정하게 된다. 많은 나라에서 비슷한 규정을 시행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사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심지어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까지, 일단 병원에만 들어가면 마지막 순간까지 떠밀리듯 끝없는 처치를 받게 되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별로 없을 터이라, 웰다잉 법안 통과에 대한 여론은 일단 우호적인 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환자 본인을 포함한 여러 당사자들이 더 이상 회생 불가능한 상태라는 데 이견 없는 합의를 보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1990년부터 15년을 식물인간 상태로 있으면서 연명의료 중단을 둘러싼 법정 공방의 상징적 사례가 된 미국의 테리 시아보 사건 역시 회생 불가능성을 두고 법적 대리인인 남편과 친정 부모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난 경우였다. 또한 현재 본인이 의사를 밝히기 어려운 경우 연명의료 중단을 위해서는 가족 전원의 합의가 필요한데, 임종기라는 급박한 순간에 가족이 합의를 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또 웰다잉, 즉 말로는 존엄한 죽음이라고 하지만, 이를 허용하는 경우 가족과 사회로 하여금 회생 가능성이 없지 않은 환자에게조차 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길을 터주거나, 상속 문제를 위해 악용되는 것은 아닐지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흥미로운 것은 테리 시아보 사건 때도 부유층의 경우에는 무의미하게 수명만 연장하는 치료에 반대하면서 인간다움 죽음을 옹호하는 의견이 많았던 반면, 경제적 취약 계층에서는 연명의료 중단의 확산이 돈 없는 사람들에 대한 치료 포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들어 반대가 많다는 조사 결과가 있기도 했다.
현실의 세상은 개인이 스스로의 의지와 가치관만을 쫓아서 치료 여부를 결정하고, 가족들은 환자의 의사와 복리를 무엇보다 우선하며, 국가는 그 결정을 물질적·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그런 곳이 결코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착하지 않은 사회에서 좋은 죽음을 맞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사전의료의향서나 치료계획서를 미리 작성해 놓는 것도 그 중 중요한 하나일 것이다. 서울대병원의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암환자는 연명의료거부를 사망 일주일 전에 결정한다고 한다. 이래서야 무의미한 연명의료로 시간을 보내는 대신 존엄하게 죽음을 맞겠다는 취지와는 거리가 먼 것이랄 수밖에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프기 전까지는 병원 시스템과 의료제도에 산적한 문제를 외면하고 현대의료의 신기루를 쫓아 명의와 신약에 목을 매는 태도로는 웰다잉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환자나 보호자가 되고 나서야 한국 의료에 관심을 두곤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대부분 병원과 의사 개인에 대해 분노할 뿐, 어떠한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한국 의료가 이렇게 되었는지를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웰다잉이란 단지 개인의 결단이나 수양에 의해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다. 좋은 죽음을 위한 준비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의료 제도를 정비하고 개혁하는 노력 역시 꼭 포함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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