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6일 수소탄 핵 실험을 했다고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수소탄까지 보유한 핵 보유국의 전열에 당당히 올라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 국방부 등에 의하면 수소폭탄이 아니라 증폭핵분열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하지만 증폭핵분열탄이라는 게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의 중간에 해당하는 ‘더러운 폭탄’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니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북한의 핵 실험이 기습적이라고 여겨지는 또 다른 이유는 ‘인공위성 내지는 로켓 발사 → 핵 실험 예고 → 핵 실험 강행’이라는 기존의 패턴이 깨진데다가, 남한의 군사 및 정보 당국이 핵 실험 징후를 사전에 전혀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핵 실험과 관련해서 내가 가장 궁금했던 점은 하필이면 왜 지금이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큰 사건이 벌어지고 나면, 표피적인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보다는 사태의 진상과 그 사태들의 연관을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하는 일이 더 중요할 것이다.
이번 4차 핵실험의 타이밍에 대한, 외국의 북한 전문가들의 설명에 의하면, 직접적 계기는 1월 8일이 김정은의 생일이라는 것이고, 그 배경에서는 우크라이나 사태 및 남중국해 분쟁 이후에 미러 및 미중 간의 정치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어 있는데다가 최근에 미국은 중동 문제로 인해서 바쁘기 때문에 북한이 준동하기에 매우 유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전직 외교관이자 정치학자인 아사이 모토후미(淺井基文ㆍ75)에 의하면, 첫 번째 설명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며 두 번째 설명에 대해서는 3차 핵 실험까지의 국제 정세와 비교해서 이번이 다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을뿐더러, 타이밍에 대해 천착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본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 취하고 있는 적대 정책이 변하지 않는 한, 북한의 핵 개발 프로그램은 계속 숙연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사이 모토후미는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는 도쿄대 법학과를 나와서 외무성에 들어갔다. 일본의 엘리트 직업 외교관은 외무성에 들어간 후 일정 기간 동안 전문적인 어학 연수를 하게 되는데 이 때 선택하는 언어가 그 사람의 근무지 및 업무 내용을 평생 좌우하게 되는 관행이 있다. 아사이는 중국어를 택했다.
그는 일본 저널리즘 용어로 ‘차이나 스쿨’에 속하는 외교관이었던 것이다. ‘차이나 스쿨’에 속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다 친중파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개는 일중 우호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가 중국어 연수를 택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마오쩌둥(毛澤東),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이끄는 중국 혁명의 성공과 사회주의 및 중국의 신선한 이미지가 왠지 모르게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사이는 일본 외무성 아시아국 중국과장을 했으며, 외무성을 나와서는 도쿄대학 등에서교수로 있다가, 퇴직 직전에는 히로시마 시립대학의 평화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그는 미일 동맹을 기본으로 하는 일본 외교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며, 평화 헌법을 수호하는 입장에서 책과 칼럼 등을 쓰고 있다. 당연히 일본의 소위 안보 법제와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서도 맹렬하게 비판을 해왔다. 아사이는 일본을 넘어서서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아사이에 의하면, 일본의 안보 법제와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특히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다. 즉, 미국은 일본에 대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뛰어들도록 강요해 왔는데 그 일차적인 이유는 소련 붕괴 이후에도 미국이 유일한 군사 강대국으로서 세계를 군사적으로 지배하는 전략을 계속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아시아로의 회귀’를 내세운 오바마 정권에게 미일 동맹의 중요성이 훨씬 증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세계 경제에 있어서, 중국을 필두로 한 동아시아 경제의 비중이 비약적으로 확대한 것에 대해서, 미국은 결코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미중 간의 상호의존은 이미 변경할 수 없는 단계에 들어와 있지만 국제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는 미국이 중국을 잠재적 적으로 삼고 있으며, 군사적으로 중국을 위협하기 위해서는 미일 동맹 강화가 지상과제라고 한다.
마지막 요인은 한반도인데, 미국은 아시아에서의 미군 주둔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북한 유사(有事)’를 특별히 강조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본심은 중국에 있지만 그 대신 북한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과 연관해서 극히 위험한 것은, 한미 동맹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의 가능성을 내포한 전략, 즉, 맞춤형 억지력(tailored deterrence, ‘적극적 억지력’)을 채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이 북한에 대해 군사력을 행사할 때,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빌미로 참전할 가능성이 있는데, 여기에는 한국의 요청이 있기만 하면 된다.
아사이를 포함한 외국의 전문가들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진정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의사가 전혀 없고, 도리어 북핵 문제를 장기간 방치, 존속시킴으로써, 소위 ‘북한 위협론’에 의지해서 미국이 추진 중인 아시아-태평양 정책, 즉 아시아-태평양에서의 미국의 정치-군사적 패권 유지를 정당화하는데 이용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쯤 되면, 지난 연말의 한일 간 위안부 관련 협의에 대해서 미국의 오바마와 케리가 박근혜 대통령을 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격려했는가가 확연히 이해된다. 미국의 의도는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을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수준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안부 문제가 빨리 어떻게든 처리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대다수 한국 국민 눈에 졸속 야합으로 보인다고 하더라고 미국의 입장에서는 그게 더 자기네 입맛에 맞는 것이니까 말이다.
아사이는 북한 핵에 대해서 그것이 대미 핵 억지력 확보와 대미 교섭력 증대라는 두 기능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위협’과 ‘억지’는 비슷하지만 다르다는 것이다. ‘위협’이란 공격할 의사와 능력을 가지는 경우에 성립하며, 공격할 의사와 능력이 없으면 군사적 ‘위협’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반면에, 공격할 의사와 능력은 없어도 반격할 의사와 능력이 있으면 군사적 ‘억지’가 성립한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에 대해서 군사적 방식의 문제 해결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인식시킴으로써, 외교 교섭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궁극적으로는 북미 국교 정상화를 노리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협상 재료로서 핵 억지력을 이용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번 핵 실험에 관해 발표하면서 “적대 세력이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은 아사이의 논지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사이 모토후미는 한반도나 북핵 문제 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일본을 넘어서서 총체적으로 사태를 보고 이해하려는 것은 납득이 간다. 그런 한에서 아사이의 이야기에는 대부분 동의하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이야기를 정서적으로 백퍼센트 받아들이기에는 힘들다. 왜냐면, 만에 하나 우발적인 원인에 의해서 핵 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경우에, 모두 죽어버리게 되는 것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인터넷 선전 매체의 이름은 ‘우리민족끼리’다. 하지만, 북한이 한반도 주민 전체를 볼모로 삼고 핵 실험을 하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 나는 더 이상 ‘민족’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북한을 보지 않는다. 그러니까, 쉽게, 이제 북한은 더 이상 우리와 같은 민족이 아니다. ‘겨레의 핵’ 운운하는 일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의 민족이라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 필요 없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한편으로 북한의 핵 실험에 대해서도 단연코 ‘No’라고 말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 남한 땅에 핵무기를 탑재한 잠수함, 배, 비행기를 수시로 들락거리게 하고 있는 미국에 대해서도 확고하게 ‘No’라고 말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이중의 전선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얘기인데, 정작 우리의 결정적인 문제는 아사이 모토후미와 같은 경륜과 식견을 갖춘 외교관이나 군인이나 정치인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야말로 우리는 졌다. 또, 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질 것임에 틀림없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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