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은 가려서 선택하지만 배역은 가리지 않는다. 극 중 인물의 성격 분석은 보편적 이해에 기반해야 하지만 평범하거나 상투적이어선 안 된다. 배우는 슬픔에 메여 울어도 대사만큼은 틀림없이 들리게 해야 한다.”
70년 넘게 무대를 지키며 한국 연극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려온 원로배우 백성희가 8일 오후 11시18분께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국립극단이 9일 밝혔다. 향년 91세.
백성희는 1950년 창단한 국립극단의 현존하는 유일한 창립 단원이자 현역 원로단원이었다. 2013년까지 국립극단의 ‘3월의 눈’과 ‘바냐아저씨’에 출연하며 현역 최고령 배우로 계속 무대에 올랐으나 지난해 가을 낙상 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투병 중이었다.
1925년 9월 2일 서울에서 태어난 백성희(본명 이어순이)는 17세에 빅터무용연구소 연습생, 빅터가극단 단원을 거쳐 1943년 극단 현대극장 단원으로 입단한 뒤 같은 해 연극 ‘봉선화’로 데뷔했다. 1950년 창단한 국립극단의 창립 단원이자 현역 단원으로 줄곧 활동해 왔다.
고인은 1972년 국립극단에서 처음 시행한 단장 직선제에서 최연소 여성 단장으로 선출돼 1974년까지 재직했고, 지도력과 행정력을 인정받아 1991∼1993년 다시 한번 단장을 지냈다. 1998년부터는 국립극단 원로단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2002년부터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도 활동했다. 2010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배우의 이름을 따 문을 연 극장인 ‘백성희장민호극장’의 주인공이기 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봉선화’(1943), ‘뇌우’(1950), ‘나도 인간이 되련다’(1953), ‘씨라노 드 벨쥬락’(1958), ‘베니스의 상인’(1964), ‘만선’(1964), ‘달집’(1971), ‘무녀도’(1979),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81), ‘메디아’(1989), ‘강 건너 저편에’(2002), ‘3월의 눈’(2011) 등이 있다.
연극계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0년 대통령표창을 비롯해 대한민국연극상(1985), 한국연극인상(1993), 제34회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1998), 은관문화훈장(2010) 등을 수상했다.
지난해 12월 구순을 맞아 회고록 ‘백성희의 삶과 연극’도 펴냈다. 책을 통해 자신이 한평생을 바쳤던 연극에 대해 “연극은 내가 볼 수 없는 것까지 보게 만들어,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새로운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참으로 오랜 여행이었지만, 나는 지금 그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에 무한히 감사한다”고 밝혔다.
고인의 별세 소식에 많은 연극인들이 애도를 표했다. 1968년 연극 ‘환절기’를 시작으로 수 많은 작품을 통해 백성희와 인연을 맺었던 임영웅 연출가는 “한국 연극계의 큰 별이 돌아가셨다”며 “제가 연극을 보기 시작할 때부터 가장 뛰어난 연기자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임 연출가는 “국립극단 단장을 역임하면서 한국 연극의 여러 가지로 이바지하신, 오직 연극만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분”이라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국립극단 창단멤버로 한국 연극을 가장 처음부터 오랫동안 지켜온 분이다. 연기자로서 상당한 입지를 개척한 선구자였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연기에 대한 강한 집념을 보였다”며 “지난 해 봄 연극 ‘3월의 눈’에 다시 참여하고 싶다고 밝히셔서 이순재 배우로 상대역을 정하기도 했는데 가을 낙상 후 미뤄졌다. 마지막 뜻을 이루지 못해서 아쉽다”고 말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이다. 발인은 12일 오전, 장지는 분당 메모리얼파크. (02)3010-2232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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