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대응 조치로 8일 정오를 기해 최전방 11개소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지난해 8월 남북 고위급 합의로 대북방송을 중단한 지 138일 만이다. 확성기 방송은 때마침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생일 날 이뤄졌다. 방송에는 남한의 체제 우위성을 선전하는 내용, 최신 대중가요 등과 함께 김정은과 북한 체제를 비난하는 내용이 가득 담겨 있어 북한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한반도 정세가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확성기 방송 재개는 청와대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실행에 옮긴 모양새다. 물론 박 대통령으로서도 상당한 부담을 감수하고 내린 결정이다. 북한의 도발에는 응징으로 대응한다는 그 동안의 원칙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너무 무르다”는 비판 여론을 의식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다만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가 제한된 상황에서 지나치게 서두른 건 아닌가 하는 의문도 적지 않다. 지난해 ‘지뢰 도발’ 당시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로 맞서자 북측은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면서 전쟁 분위기로 몰아갔던 점에 비춰 군사적 충돌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일각에서는 확성기 방송이 북한 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아 대북 압박 수단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확성기 방송 재개는 언제라도 ‘준전시 상태’가 가능한 상황으로의 돌입을 의미한다. 예측이 불가능한 북한의 행태에 비춰 언제 어디서 도발을 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당장 확성기를 직접 타격 할 수도 있고, 휴전선이나 NLL(북방한계선) 일대에서 강도 높은 군사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제 당면한 과제는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다. 벌써 접경지역 주민들은 지난해의 악몽을 떠올리며 불안해하고 있다. 접경지대의 긴장 고조로 안보관광이 전면 중단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지역경제가 더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나온다. 우리 정부가 이런 우려를 알면서 재개 결정을 내린 만큼 만반의 군사적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준비까지 한치의 허점도 없어야 한다.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고 생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안심시키는 조치도 필요하다. 정부의 확고한 대비태세와 대응방안을 국민에게 소상히 설명해야 함은 물론이다.
북한 핵실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허를 찔린 ‘안보 무능’이 되풀이되는 일이 없도록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그래야 국민도 정부를 믿고 결연한 자세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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