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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행성에서 사랑했고 사랑받았습니다

입력
2016.01.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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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계의 계관시인’ 올리버 색스 자서전

온 더 무브

올리버 색스 지음ㆍ이민아 옮김

알마 발행ㆍ496쪽ㆍ2만2,000원

“두렵지 않다고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감사하는 마음이 가장 큽니다. 나는 사랑했고 또 사랑받았습니다. 많은 것을 받았고 일부는 되돌려주었습니다. 나는 읽고 여행하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세상과 소통했고, 특히 여러 작가와 독자와 소통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의식 있는 존재, 생각하는 동물로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 자체가 내게는 크나큰 특권이자 모험이었습니다.”

지난해 2월 19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올리버 색스의 특별 기고문 중 일부다. 2005년 눈에 생긴 암이 간으로 전이된 사실과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전하는 이 글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 세상에 작별을 고하는 겸손하고 따뜻한 인사였다. 그로부터 두달 뒤 그의 자서전 ‘온 더 무브’가 나왔다. 그 해 8월 30일, 올리버 색스는 세상을 떠났다. 전세계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온 더 무브’로 다시 만나는 올리버 색스를 이렇게 요약하고 싶다. 죽음을 앞두고 생애를 회고하는데도 유쾌하기 짝이 없다. 솔직하고 뭉클하다. 유머 감각도 여전하다. 올리버 색스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고 나면 그가 쓴 다른 책들을 모조리 찾아 읽고 싶어질 것 같다.

올리버 색스는 평생 쉬지 않고 글을 썼다. 침대맡에 공책을 두고 자다가도 일어나 썼다. 사진 제공 알마
올리버 색스는 평생 쉬지 않고 글을 썼다. 침대맡에 공책을 두고 자다가도 일어나 썼다. 사진 제공 알마

대표작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비롯해 그가 쓴 10여 권의 책은 대부분 한국에도 번역 출간돼 있다. 모자를 찾다가 옆에 앉은 아내의 머리를 집어든 신경장애 환자의 이야기인 이 책 덕분에 우리는 알아듣기 힘든 전문 의학용어의 컴컴한 밀림을 헤매지 않고도 코르사코프 증후군이라는 낯선 신경질환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인간의 뇌와 정신 활동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임상에서 만난 환자들 사연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들려주던 신경과 전문의 겸 저술가, 올리버 색스. 뉴욕타임스는 그를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고 불렀다.

그가 누구인지 설명하려면 한 마디로는 부족하다. 세상 모든 것을 모험으로 받아들였던 타고난 모험가이자 여행가,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으로 지적 여정을 계속한 탐험가, 모터사이클 속도광, 수영과 스쿠버다이빙과 역도에 미친 ‘몸짱’ 청년, 마약중독자, 동성애자, 인간의 약함 특히 환자들과 사랑에 빠진 의사. 육체적 도전을 해도 끝까지 밀어부치는 무모함으로 내달렸던 청년시절 올리버 색스를 두고, 그가 의지하고 사랑했던 이모는 이렇게 말했다. “이 미치광이 같은 놈아.” 오죽했으면!

의사 부모 밑에 나고 자라 원 없이 신나게 살다 간 잘난 사람 같지만 알고 보면 상처 투성이 흠집 많은 인간이기도 하다. 스스로는 수줍음 많은 성격에다 사람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얼굴맹, 육체는 몸짱이지만 마음은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수동적이라고 평한다.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꼈고 친구들에게 지적으로 뒤떨어졌다고 생각했으며, 책을 써서 이름이 알려진 뒤에도 내가 정말 잘 쓴 걸까 의심하고 불안해했다.

성정체성 때문에 겪은 갈등은 그의 인생에 큰 자리를 차지한다. 열 여덟 살 때 그가 동성애자임을 안 어머니는 “가증스럽구나.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라고 했다. 그 말은 평생 죄의식이 되어 그를 따라다녔다.

그림 3 모터사이클광 올리버 색스. 주중에는 환자 보고 주말이면 모터사이클에 빠져 지냈다. 사진 제공 알마
그림 3 모터사이클광 올리버 색스. 주중에는 환자 보고 주말이면 모터사이클에 빠져 지냈다. 사진 제공 알마

이 자서전에서 올리버 색스는 더없이 솔직하다. 스무 살에 만난 첫사랑부터 일흔 다섯에 만난 생애 네 번째이자 마지막 사랑까지, 동성애 편력을 고백할 때도 다르지 않다. 사랑을 고백했다가 거절 당한 뒤 마약에 빠져 지낸 4년을 돌아볼 때도 마찬가지다. 그를 건진 것은 환자들이다. 임상에서 만난, 기이한 신경장애로 끔찍한 고통을 받는 환자들에게서 그는 ‘진짜 사람’의 ‘진짜 문제’를 보았다. 단순히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에 끝나지 않고 그들에게 삶다운 삶을 돌려주려고 애쓰면서 그는 자신을 치유했고 우울증에서 빠져나왔다. 인간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그 바탕에 있다.

항암치료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그는 오른쪽 눈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불편할 뿐 아니라 슬픈 일이었지만, 그는 달랐다. 마치 ‘신세계를 발견한 듯한 기분’에 ‘신이 나서’ 자신의 증상을 상세히 기록하고 연구했다. 정말이지 못 말리는 호기심 대마왕이다.

책 제목 ‘온 더 무브’는 그의 절친인 시인 톰 건의 같은 제목 시에서 가져온 것이다. 책에 그 시의 일부가 나온다. “아무리 나빠도 우리는 움직인다. 아무리 좋아도/절대에 가닿지 못하는, 안식할 곳 없는 우리, / 언제나 멈춰 있지 않아, 더 가까워진다”

톰 건을 이야기하며 올리버 색스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전혀 예측하거나 제어할 수 없는 진화와 성장의 여정에 닻을 올린 사람들이었다.”

닻을 올려 떠나라. 저승의 올리버 색스가 독자에게 편지를 쓴다면 이 말을 하지 않을까. 거기서도 이러고 있을 것 같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국내 번역 출간된 올리버 색스의 책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뮤지코필리아

환각

마음의 눈

올리버 색스의 오악사카 저널

색맹의 섬

목소리를 보았네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깨어남

편두통

엉클 텅스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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