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한일 양국은 위안부 합의를 전광석화처럼 처리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NHK 속보로 기시다 외무장관의 서울 파견이 알려지고 담판이 끝나기까지 고작 3일 반나절이 걸렸다. 그리고 올해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모두 국회 선거전을 맞이한다. 일본내 우익을 단속하고 진보진영의 김을 빼버린 아베의 속도전엔 혀를 내두르게 된다. ‘최종적ㆍ불가역적 합의’로 벌집을 건드린 듯 시끄러운 한국과 대조적이다.
골치 아픈 걸림돌을 연내 청산해 정치적 이익을 만끽한 쪽은 아베 총리다. 일본을 짓누르던 위안부 화두를 털어버리고 이젠 북한 핵실험 사태를 빌미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을 압박하는 상황이다. 아베 총리는 5월엔 미에(三重)현에서 열리는 주요7개국 정상회의를 정점으로, 국제외교무대를 공격적으로 주도한 뒤 7월 참의원 선거를 맞게 된다.
선거 직전까지 몸을 사리다 선거 후 대담한 이슈를 밀어붙이는 패턴은 아베의 전매특허다. 재작년 11월 중의원 해산 때는 스스로 ‘아베노믹스를 위한 해산’으로 부를 만큼 경제를 선거쟁점으로 띄웠다. 그리고 압승하자 안보법 통과를 밀어붙였다. 이번엔 북한사태로 그간의 우경화 상황논리가 날개까지 달게 됐다.
보수 주류에게 올해는 전후 일본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역사적 한 해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일본사회 전반의 보수화 심리를 냉정하게 들여다봐야 효과적 대처가 가능할 것이다. 종전 70년인 작년 일본은 역사문제로 뜨거웠다. 우익들에겐 “왜 70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전후 프레임에 갇혀야 하냐”는 불만이 임계점에 도달했다. 한국과 중국은 실제론 전승국도 아니면서 일본의 패전국 지위를 영원히 고정시키려 한다고 보고 있다.
우익언론이 내부 기자들에게 올해 활약한 정치인을 설문한 결과에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한 여기자는 ‘아베 담화’에서 ‘차세대에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선 안된다’고 한 점이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 가장 기뻤다고 했다.
돌파력이 탁월한 아베 총리를 유능한 정치리더에서 제외하긴 어렵다. 실제 방위성이나 관료사회에서 정치가 흔들림 없어 행정이 일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고 한다. 단명 총리들이 즐비한 일본에서 ‘결정하지 못하는(키메라레나이) 정치’란 용어가 사라졌다. 가히 대통령제와도 비슷한 변형된 총리제가 자리잡아 가는 과정이다.
3년 이상 장기집권한 총리들은 대부분 난제들을 밀어붙였다. 최장 7년을 집권한 사토 에이사쿠 내각은 1969년 오키나와 반환 미일합의를 실현했고, 나카소네와 고이즈미는 국철민영화, 우정민영화란 ‘뜨거운 감자’를 정면에서 부딪쳤다. 집단자위권 헌법해석변경과 안보법을 통과시킨 아베는 어떤가. 전범국 총리가 오히려 ‘적극적 평화주의’라며 63개 국가ㆍ지역을 누벼 최다 해외방문을 기록중이다.
전후 체제를 벗어나 새로운 일본을 완성시키려는 의욕은 헌법개정만을 남겨두고 있다. 7월 참의원선거가 중대한 관문이다. 아베 총리는 우익정치인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전 오사카 시장을 끌어들일 작정이다. 돌출언행으로 볼거리를 제공해 미국 공화당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와도 비슷한 인물이다. 전형적인 투쟁형 정치인끼리 스크럼을 짜고, 자민당 통치방식인 ‘수의 힘’으로 이기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베_하시모토 개헌연합’과 현정권의 위험성을 호소하는 ‘야당 및 시민연합’이 일본대전환의 운명을 놓고 정면승부를 벌인다. 일본 국민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잃어버린 10년, 동일본대지진으로 위축된 일본인에게 연달아 닥친 것은 중국의 군사적 위협과 북한 핵도발이다. 여름이 올 때까지, 일본의 자존심을 찾자는 부추김이 더 고조될 것이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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