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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 육수에 빙초산 살짝 “이것이 제주 물회”

입력
2016.01.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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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물회.
자리물회.

해군기지로 시끄러운 서귀포 강정 마을은 옥돔으로 유명한 곳이다. 한적했던 어촌으로 해안 작은 포구 주변에 민가가 형성돼있다.

한겨울 방어의 철이 지나면 다음은 옥돔이다. 강정 마을에는 아직도 어시장이 없다. 마을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도로 주변으로 고깃배가 풀어놓은 제철 생선들이 펼쳐지는데 그 중의 으뜸은 단연 옥돔이다.

다른 생선에 비해 살이 물러서 배를 갈라 포를 뜬 뒤, 해풍에 말려 반 건조 상태로 식당에서 많이 판매된다. 하지만 제주까지 온 마당에 생옥돔 구이 한 마리 정도는 먹어줘야 여행의 보람이지 않을까. 두툼한 생옥돔의 살을 먹다 보면 더 이상 반건조 옥돔은 안 사먹을 것 같다. 이런 게 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호사가 아닌가.

범섬이 내려다 보이는 법환 포구를 지나 먼 발치 백록담의 흰 눈이 녹기 시작하는 4월이 오면 서귀포 보목 마을에는 자리돔이 한창이다.

손가락 크기의 이 작은 생선은 뼈 채로 썰어 ‘세꼬시’ 처럼 먹던가 된장을 풀은 육수에 얼음을 동동 띄워 시원하게 말아 먹는다.

보목 마을 주변에도 자리 물회를 파는 식당이 많은데 육지에서 내려온 관광객들에게는 초장 비율이 높은 물회가 인기이고, 마을 사람들은 된장 육수에 빙초산을 살짝 넣은 물회를 선호한다.

가끔씩 육지 사람들이 왜 빙초산을 먹느냐고 물어보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여태까지 그렇게 먹어 왔다”는 정도다. 초장을 많이 넣은 물회에 비해 된장 물회는 맛의 액센트가 아무래도 약해 제피, 빙초산, 청양 고추 등으로 허전함을 달래는 것 같다.

모슬포의 드센 자리돔에 비해 보목의 자리돔은 한결 부드럽다. 물횟감으로는 한치와 함께 항상 최고로 대접받는 것이 보목의 자리돔이다.

각재기국.
각재기국.

제주에서만 먹는 국으로 각재기국, 갈칫국 등이 있다. 된장 푼 물에 얼갈이 배추를 넣고 각재기를 넣으면 각재기국이 되고, 각재기 대신 갈치를 넣은 뒤 단호박만 송송 썰어 넣으면 갈칫국이 된다.

‘제주 음식 문화는 심심하고 단순하다’는 말을 듣게 하는 이 음식들은 어쩌면 가장 제주스러운 토속 음식이다.

추운 바다 속에서 해산물을 따야 하고 봄이면 고사리 장마 속에 한라산에 올라가야 하며 가을에는 밀감 밭으로 일을 나가야 하는 제주 여인들에겐 요리할 시간 자체가 사치였다. 단순하지만 자연의 신선함을 그대로 간직한 제주의 생선국은 과한 양념이나 인스턴트 음식이 남용되는 요즈음에는 오히려 건강 밥상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

서귀포의 음식은 여러 가지 음식 재료를 섞어 만드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찌개류는 별로 발달하지 않았다. 그대신 풍부한 수산물을 이용한 음식이 많은데 특히 국에는 어패류와 해초를 이용해 성게국, 보말국, 깅이국(겟국) 같은 독특한 식문화를 이어왔다.

일주동로를 타고 서귀포의 해안을 달리다 보면 바다는 예전 그대로인 것 같은데 사람들과 그들이 머무는 마을들은 한 해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다. 제주에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는 만큼 다양한 음식의 교류도 이뤄질 것이다. 서귀포의 깊은 맛도 보다 세련되면서 새로운 미식 트렌드를 이끌어갈 수 있기를. ‘서귀포 시크’의 현실화를 통해 제주가 더 멋있고 맛있는 섬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이재천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총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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