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말 정의화 국회의장이 청와대의 경제관련 법안 직권상정 요구를 거부하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이인재 최고위원 등 여권 지도부는 대통령의 긴급재정명령권을 환기시키며 정 의장을 압박했다. 긴급명령권은 헌법 제76조에 근거한다. 1항은 “내우 외환 천재 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ㆍ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ㆍ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이에 관하여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대한 재정ㆍ경제상의 위기” 진단과 “국가의 안전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상황 판단의 주체는 물론 대통령이다. 국민은 그 판단이 합당하지 않을 경우 합법적인 집회나 시위 그리고 투표행위 등을 통해 책임을 묻는 도리밖에 없다.
한편 국회의장에게는 국회법 85조가 규정한 법안의 직권상정 권한이 있다. 그 요건 역시 천재지변,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등이다. 정 의장은 “지금 경제상황을 (국가비상사태라) 볼 수 있느냐에 대해서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행정에 대한 입법의 견제 기능이 드물게 작동된 예였다.
대통령 긴급재정명령이 제4공화국 헌법에서는 ‘긴급조치’였다. 유신 정권의 긴급조치는 지금처럼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이 아니라 헌법과 맞먹는 위력을 발휘했다. 1974년 오늘(1월 8일) 긴급조치 제1호가 발표돼 오후 5시부터 시행됐다. 내용은 이러했다.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제1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제2항)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제3항)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해 비상군법회의에 의해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했다. 긴급조치가 한사코 보호하던 헌법이란 유신헌법, 즉 삼선개헌으로 간신히 삼선(71년)에 성공한 박정희가 72년 10월 초법적 ‘특별선언’을 통해 국회를 해산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내놓은 7차 개정 헌법. 6년 임기 대통령의 연임제한 철폐,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접선거를 통한 종신 대통령 보장이 골자였다.
긴급조치는 9호(75년 5월 13일)까지 나왔고, 80년 헌법 개정으로 ‘비상조치’로 대체됐고, 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으로 ‘긴급명령’이 됐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7년 박정희 집권기 긴급조치 위반으로 기소된 589건을 분석한 결과 48%(282건)가 술자리나 수업 중 박정희ㆍ유신체제를 비판한 말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첫 긴급조치로부터 42년이 흘렀고 많은 것이 달라졌고 또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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