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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 퍼(Fur)렇게 멍든 동물들

입력
2016.01.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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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모피를 위해 희생되는 동물이 8,000만~1억 마리에 달한다. 패션의 윤리를 생각할 때다. 게티이미지뱅크
매년 모피를 위해 희생되는 동물이 8,000만~1억 마리에 달한다. 패션의 윤리를 생각할 때다. 게티이미지뱅크

올 겨울, 모피가 유행이다. 옷의 세부적인 장식으로 모피를 사용하거나, 목을 감싸는 스톨(stole) 형태로도 많이 나왔다. 자연이 진화를 거쳐 빚어낸 천연 피부인 모피는 고래로 부와 글래머의 상징이다. 최근 저명한 구두 브랜드 마놀로 블라닉이 뉴욕에서 법정 소송에 휘말렸다.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협약상의 보호종인 뱀의 스킨을 이용해 만든 구두를 수입하려다가 미국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걸린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버킨백도 논란이 됐다. 가수 제인 버킨이 자신의 이름을 딴 가방에서 이름을 빼달라고 성명을 냈다. 악어의 코를 잡고 밑으로 내린 후 척추 중간에 칼을 꽂아 쇼크사로 죽이는 잔혹한 과정을 안 것이다. 물론 에르메스의 발 빠른 대응으로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모피를 손상 없이 벗겨내기 위해 덫을 설치해 동물을 산 채로 잡았다. 기원전 7세기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정치가 관중이 지은 ‘관자(管子)’를 보면 고조선은 최상급의 문피, 즉 호랑이나 표범과 같이 얼룩무늬 맹수의 가죽을 수출하는 모피 무역의 중심지로 소개되고 있다. 고구려 시대 무용총의 수렵도를 보면 말을 타고 풍산개와 함께 호랑이와 사슴에게 활을 겨누는 무사들이 보인다. 화살촉을 보면 날카롭지 않다. 즉 명적이라 불리는 소리 나는 화살촉을 이용, 몰이사냥을 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가죽을 높은 값에 팔기 위해 동물을 몰아서 나무 울타리 덫에 빠지도록 한 것이다.

16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는 비버의 수난시대였다. 1580년대 파리를 중심으로 비버 가죽 모자가 대유행했기 때문이다. 비버털을 압축해 만든 펠트 모자는 탄력과 윤기가 좋아 부유층의 필수품이 되었다. 비버 모피는 역사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개발하는 계기가 되었고 뉴욕 맨해튼은 비버 모피 수집을 위한 가죽거래 교역소가 되었다. 인간의 유행은 비버의 씨를 말렸다. 그렇게 유럽이 죽어나가고 시베리아가, 북미가 죽어나갔다. 1720년까지 북미 동부에서 죽은 비버의 숫자가 200만 마리가 넘는다. 비버 이후에 19세기엔 물개가, 또 20세기 초엽에는 검은 여우가 뒤를 이었다. 이때부터 대학살의 여파로 야생동물이 품귀현상을 빚자 모피용 동물 사육이 시작되었고 은여우가 모델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후, 전쟁 동안 물자부족에 허덕이던 유럽의 여성들은 밍크의 부드러움과 우아함에 빠졌다.

1995년 5월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 주민들은 동물보호단체가 발의한 ‘모피품질표시법’과 싸우기 위해 표결에 들어갔다. ‘소비자 경고: 이 상품은 감전사, 질식사, 목 꺾임, 독살, 곤봉질, 밟거나 강철 덫에 턱이 조이거나 다리가 붙잡혀서 죽은 동물의 모피로 만들었음’이라는 내용의 라벨을 모피 상품에 부착하자는 법안이었다. 결과는 부결이었다. 지금도 캐나다에선 매년 30만 마리 내외의 바다표범 사냥을 허용한다. 털가죽과 오메가3 지방산을 얻기 위해서다. 털이 희고 복슬복슬한 새끼 바다표범이 주 표적이다.

모피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동물의 의식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껍질을 벗겨낸다. 현재 모피 의류 제조를 위해 4,000만 마리의 밍크와 1,000만 마리의 여우가 사육되거나 덫에 잡힌다. 400만 마리의 캥거루가 사냥되고 15만 마리의 검은 담비와 30만 마리의 너구리가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진다. 사육여우가 모피를 위해 도살될 때까지 평균 7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 기간 동안 여우는 1m도 채 되지 않는 공간에 갇혀 평생을 지낸다.

모피코트 한 벌을 위해서는 백 마리의 친칠라가, 여우코트 한 벌에 스무 마리의 여우, 밍크코트 한 벌에 쉰다섯 마리의 밍크가 필요하다. 이렇게 매년 8,000만~1억 마리의 동물이 모피 제조를 위해 죽임을 당한다. 올 겨울 인조모피인 페이크 퍼가 유행이다. 환경과 윤리에 조금씩 눈떠가는 패션계의 변화가 보기 좋다. 기술을 통해 과거 우리가 모피에 부여한 신성과 매력을 더 멋지게 재현해낼 수 있는 시대다. 더 이상 퍼(Fur)렇게 두 눈 뜨고 죽어가는 동물들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도 오메가3 끊을란다.

김홍기·패션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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