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45명에
‘강의 비개설’ 사실상 해고 메일
서울대 음대 113명 해고 현실화
강사법 유예 불구 달라지지 않아
“신분보장 담은 제도 도입 시급”
경희대에서 5년간 학생들을 가르쳐 온 시간강사 A씨는 지난달 24일 이 대학 교양교육기관인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자신이 4년간 강의해 온 과목이 폐지됐다는 ‘강의 비개설 안내’ 이메일을 받았다. 사실상 해고 메일이다. 이런 내용의 메일을 받은 시간강사는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만 45명에 달한다.
앞서 대학 시간강사의 고용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시간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오히려 시간강사의 대량해고 사태를 불러올 것이란 반대에 부딪힌 끝에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2년 유예안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해고 조치도 백지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A씨는 최근 아예 희망을 접었다. 시간강사 구조조정 계획을 철회할 뜻이 없다는 대학 측 입장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경희대 측은 이번 무더기 강의 미의뢰 조치는 ‘시간강사는 연속 8학기를 초과해 강의를 개설할 수 없다’는 내부 규정에 따른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8학기 후 한 학기를 쉰 뒤 과목이 남아 있으면 다시 강의를 맡을 수 있었던 반면, 이번에는 교과과정 개편 명목으로 아예 과목이 폐지됐다. A씨는 7일 “결국 시간강사법 시행유예 여부와 상관없이 대학에서 시간강사란 줄여야 하는 대상이었을 뿐”이라며 “대학구조조정 및 교육부의 대학평가지표에 맞추기 위해 교육 현장에서 일해 온 사람들을 쳐낸 것이나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시간강사법 시행은 유예됐지만 시간강사를 보호할 법적 장치의 공백으로 인해 시간강사 대량해고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비슷한 상황은 최근 서울대 음대에서도 벌어졌다. 전모(44ㆍ여)씨는 지난해 1월 서울대 음대 강사 공채에 합격해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서울대 학칙상 시간강사 임용 기간은 한 학기씩이지만 성악과는 관행적으로 5년의 임용 기간을 보장해 왔다. 전씨도 5년 계약을 전제로 강의를 해 왔으나 서울대 음대는 지난해 말 돌연 신규강사 채용 공고를 냈다. 앞으로는 1년만 임용 기간을 보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시간강사법 시행을 염두에 둔 조치였지만, 서울대는 현재 “강사법이 폐기되거나 유예되더라도 학기 단위로 성악과 강사를 새로 임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113명의 전체 음대 시간강사들이 해고자 신분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
두 학교의 시간강사 대량해고 사태는 고스란히 학생들 피해로 돌아갈 수 있다. 경희대의 경우 후마니타스 전임교수와 시간강사들이 가르쳐 왔던 교양교과목 수를 대폭 줄이면서 의무 수업시수 15학점을 채우지 못하는 타 단과대 전임교수들에게 교양 강의개설권을 부여했다. 애초에 후마니타스를 도입할 때 내걸었던 ‘인간다운 인간’ 양성 취지에 맞는 과목이 아니라 강의수를 채우기 위한 과목들이 양산될 공산이 크다. 서울대 음대의 경우 강사와 학생이 일대일로 레슨을 하는 수업 특성 상 해마다 실기지도 교수가 바뀌면 강의 연속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결국 시간강사의 신분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임순광 한국비정규교수노조위원장은 “이렇게 대규모의 해고가 아니더라도 시간강사 해고는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며 “시간강사법은 시간강사의 교원지위 확보, 처우개선, 신분보장을 확실히 담보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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