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로 보낼 땐 해당 배우 대사만
“준비 시간 부족” 불만 목소리도
완성된 대본은 촬영 현장에서 직접 받는다. 배우들 사이에서는 영화 ‘바람’(2009)파가 생겼다. 화제의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촬영 현장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18화 대본은 현장에서 받으시기 바랍니다.’ ‘응답하라 1988’에 출연하는 한 배우는 지난 6일 제작진에게서 이런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드라마나 영화 대본은 보통 배우들에게 택배나 우편으로 전달된다. ‘응답하라 1988’의 18화 대본은 9일 방송 분이라 한시가 급한데 촬영장에서 받으라니. 드라마 관계자는 7일 “제작진이 ‘응답하라 1988’ 내용 유출 때문에 대본 전달 방식에 유독 신경을 써서 그런 것”이라며 “내용 유출 때문에 대본도 딱 한 부만 준다”고 말했다. 인터넷이나 언론에 유출돼 기사로 나오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부득이 대본을 메일로 전달할 때는 해당 배우의 대사만 보내기도 한다. ‘응답하라 1988’에 출연하는 조연급 배우는 “드라마 1화를 찍기 전에는 내용 유출 때문에 메일로도 못 보내준다고 해서 촬영 현장에서 확인했다”며 “이메일로 내 대사를 받을 때는 전체 촬영신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따로 물어보곤 한다”고 귀띔했다. 촬영 내용을 전체적으로 이해해야 연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배우들에겐 제작진의 대본 철통보안은 번거로운 일이다. ‘응답하라 1988’ 주연급 배우의 관계자는 “대본을 늦게 받아 준비 시간이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
‘응답하라 1988’과 영화 ‘바람’의 인연이 이어지는 것도 눈길을 끈다. 드라마에서 쌍문고 선생님으로 처음 캐스팅된 유재명과 주인공인 정환(류준열) 등의 친구로 나오는 김중기는 모두 ‘바람’에 출연했던 배우들이다. 두 사람 모두 영화 속 배역과 드라마 속 배역이 같다. 김중기는 극중 이름(마이콜)까지 똑같다. 이를 두고 김중기는 최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처음 미팅을 갔을 때 신원호 PD가 ‘바람’을 인상 깊게 봤다고 하더라”며 “머리스타일도 영화 속 마이콜과 같이 곱슬머리로 해 달라고 했다”며 웃었다. ‘응답하라 1998’에 앞서 2013년 방송된 ‘응답하라 1994’에는 정우와 손호준 등 주연 배우를 비롯해 양기원, 이유준, 지승현 등 깜짝 출연한 이들까지 ‘바람’에 출연했던 5명의 배우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정석희 방송평론가는 “‘바람’이 대중적으로 흥행한 영화는 아니지만 알아 볼 수 있는 시청자에겐 드라마 속 영화 활용이 공감대를 높이고 재미를 줄 수 있는 요소”라고 말했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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