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때론 매니저 때론 가족... 통역사는 트랜스포머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때론 매니저 때론 가족... 통역사는 트랜스포머죠"

입력
2016.01.07 18:04
0 0
여자프로배구 KGC인삼공사의 통역사 최윤지(가운데)씨가 3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헤일리(왼쪽)에게 이성희(오른쪽) 감독의 지시를 전하고 있다. 인천=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여자프로배구 KGC인삼공사의 통역사 최윤지(가운데)씨가 3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헤일리(왼쪽)에게 이성희(오른쪽) 감독의 지시를 전하고 있다. 인천=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지난해 12월22일 경북 김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KGC인삼공사와 한국도로공사의 경기. 2-2로 맞서던 마지막 5세트 KGC인삼공사의 헤일리 스펠만(25ㆍ미국)이 때린 공이 상대코트에 꽂힌 순간 선수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11연패를 끊어내고 시즌 2승째를 거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인터뷰를 하는 헤일리 옆에서 통역을 하던 최윤지(26)씨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프로스포츠 통역사는 외국인 선수의 ‘입과 귀’를 넘어 친구이자 매니저 역할까지 한다. 최씨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붙어 있다”고 말했다.

V리그는 외국인 선수의 기량이 ‘팀 전력의 절반’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매 시즌 외인의 활약에 따라 팀 성적 희비가 엇갈리는 만큼 통역사의 역할도 중요하다.

7일 현재 여자부 득점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는 헤일리(550득점)의 곁에는 늘 최윤지씨가 있다. 영어에 능통하지만 그는 ‘국내파’ 통역사다. 학창시절 멕시코를 방문해 현지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친 게 전부다. 한양대에서 체육학을 전공한 그는 “영어는 따로 공부했다. 스포츠 구단에서 통역을 한 건 처음”이라며 웃었다. 최씨는 V리그에서 통역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전공에 맞춰 스포츠 관련 직종 일을 찾다가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헤일리가 지난해 5월 트라이아웃을 통해 KGC인삼공사에 1순위 지명된 뒤 팀에 합류했다. 헤일리의 운전면허증 발급부터 숙소에 인터넷을 설치할 때도 최씨가 함께 했다. 코트 위에서 휴식시간마다 수건과 음료수를 챙겨주는 것도 그의 몫이다. 최씨는 “통역사는 선수의 매니저도, 친구도, 가족도 돼야 한다”며 “다양한 역할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 트랜스포머 같은 존재”라고 강조했다.

체육학을 전공했지만 스포츠 통역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최씨는 “아예 (배구를) 모르는 사람보다는 낫겠다 싶었지만 배구관련 영어 단어나 사인 같은 부분은 선수가 아니면 알기 어려웠다”고 했다. 특히 30초 남짓한 작전타임때 이성희(49ㆍKGC인삼공사) 감독의 말뿐 아니라 생각까지 전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최씨는 경기 영상을 돌려보거나 영상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적어뒀다가 경기분석관에게 물어보며 공부했다. 작전타임 중 감독의 거친 표현도 부드럽게 전달하는 것도 통역사의 역할이다. 최씨는 “거친 말을 100% 똑같이 전달할 수는 없다”며 “감독님과 선수 사이 감정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도 내 역할”이라고 귀띔했다.

취침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있는 만큼 개인 시간을 내긴 쉽지 않다. 훈련시간에도 감독과 선수 사이 소통의 다리가 돼야 한다. 최씨는 “개인적인 일이 생겨도 업무 특성상 남아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커피를 좋아하는 헤일리가 홀로 ‘커피 타임’을 갖고 싶을 때는 예외다.

그는 헤일리에 대해 “다가가기 힘들 거라고 생각하지만 친해지면 장난기도 많고 마음도 여리다”며 “영화 보는 것과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시즌 시작을 앞둔 지난해 추석 연휴에는 헤일리와 함께 할머니 댁인 포항을 방문하기도 했다. 최씨는 “한국음식을 아주 잘 먹어 가족들이 좋아했다”고 떠올렸다.

“경기 중 감독님의 의사가 제대로 헤일리에게 전달 돼 점수로 이어졌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최윤지씨는 “헤일리가 시즌을 마무리할 때까지 아무 불편함 없이 돕고 다른 선수들, 감독님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허경주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