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대 시인은 ‘감정 공산주의’라는 말을 곧잘 쓰곤 한다. 벌떡 ‘종북 좌파’와 ‘북괴’라는 말부터 떠올린다면 당신은 지적ㆍ정서적 맹추나 마찬가지. 그런 정치인을 상전 모시듯 하는 나라라면 이민 떠날 준비나 하겠다. 박정대의 시적 자아는 늘 이민 중이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은 시인들의 오랜 테마였다. ‘다른 곳’은 특정한 어디가 아니다. 방점은 ‘이곳이 아닌’에 찍힌다. 시인에게 ‘이곳’의 현실은 늘 척박하고 무지하고 강퍅하다. 행복은 현실을 기만하는 척도로 저울질되고, 안락은 상대적 결핍의 기울기만 극대화할 뿐이다. 시를 읽는 게 모종의 구체성을 통해 보편의 추상으로 영혼을 넓히는 일이라 했을 때, 박정대에게 ‘이곳’은 현재의 대한민국이기도, 현세이기도 하다. 삶의 모든 게 놓여있는 ‘이곳’이 그런데, 살만한 곳이 못 된다. 누구에게 감정을 쓰는 게 노동이 되고 그 노동의 조건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다시 현실의 여러 제약들, 강요되면서 확대 재생산되는 욕망의 역리 작용 속에 갇힌다. 그렇게 사랑도 희망도 지쳐간다. 그래서 시인은 나누고 싶어 한다. 마음 쓰고 돌보는 일, 그리고 마음을 내려놓는 일까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나누자는 것. 영혼을 나눠 먹는 현세의 바깥을 그리자는 것. 그게 꿈이라 단정한다면, 하여 현실의 단말마적 폭리에나 집착한다면, 당신이 누구든 내 앞엔 나타나지 마시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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