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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은 관광지 아닌 한국 문화의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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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은 관광지 아닌 한국 문화의 정수"

입력
2016.01.0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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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의 침묵’ ‘금오신화’ 등 탄생한 곳 인문학적ㆍ역사적 가치 보존해야

정부의 케이블카 설치 계획은 산을 관광지로만 인식하는 것”

임채욱 사진작가는 "설악산이 한국 문화의 정수"라고 말했다.
임채욱 사진작가는 "설악산이 한국 문화의 정수"라고 말했다.

“설악산을 관광지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한국인의 정신이 발원한 곳입니다. 지금까지 산에게 요구만 했는데, 산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작가 임채욱(46)이 지난 8년간 촬영한 설악산 사진을 모은 전시 ‘인터뷰 설악산’을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열었다. 그는 지난해 8월 환경부의 승인을 얻은 설악산 케이블카 신설 계획을 비판하며 “케이블카 신설은 설악산의 환경과 역사적 가치를 부정하고 관광지로만 인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채욱이 보는 설악산 풍경의 핵심은 전시장에 8m 높이의 입체 사진작품으로 재현한 ‘봉정암 부처바위’다. 신라 경덕왕 때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진신사리(석가모니의 사리)를 들여와 한반도 내 다섯 장소에 보관했는데 그 중 하나가 봉정암 5층석탑이다. 임채욱이 사진으로 포착한 부처바위는 이 탑을 향해 합장하는 미륵보살의 옆모습을 하고 있다. “봉정암 뒤편으로 케이블카가 올라가게 된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부처가 케이블카를 향해 합장하는 꼴이 됩니다. 백담사에서 5, 6시간 동안 힘겹게 올라 복을 기원하는 성지로서 봉정암의 가치가 사라지는 거죠.”

임채욱이 찍은 ‘봉정암 부처바위’는 진신사리를 모신 봉정암 5층석탑을 바라보며 합장하는 미륵보살 모양이다. 임채욱 제공
임채욱이 찍은 ‘봉정암 부처바위’는 진신사리를 모신 봉정암 5층석탑을 바라보며 합장하는 미륵보살 모양이다. 임채욱 제공

임채욱은 ‘설악산 마니아’다. 전시장에 나온 사진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설악산 자랑을 끊임없이 늘어놓았다. 그의 주장은 “설악산이 한국 문화의 정수”라는 것이다. “만해 한용운이 ‘님의 침묵’을 적은 장소가 백담사, 매월당 김시습의 ‘금오신화’가 탄생한 장소가 오세암, 진경산수화로 유명한 겸재 정선의 스승 삼연 김창흡이 거주하던 곳이 영시암입니다. 산세가 험준해서 금강산에 비해서는 조명을 덜 받았지만 인문학적, 역사적 가치가 깊은 땅입니다.” 그가 촬영한 사진 중 일부는 김창흡이 쓴 설악산 여행기 ‘설악일기’의 내용을 그대로 좇아 찍은 것이다.

임채욱은 2008년부터 사진으로 산과 대화했다. 지리산ㆍ덕유산 등 여러 산을 찍었지만 설악산에 유달리 더 끌렸다. “힘겹게 산을 올라 내설악에 접어들고서야 비로소 비경을 보여주는 설악산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최근 두 달은 일주일에 2, 3일을 설악산에서 보냈다. 정성을 들인 덕에 갠 날의 말간 얼굴과 운해(雲海)로 치장한 신비로운 얼굴이 두루 사진에 담겼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임채욱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벤처 사업가로 활약하다가 사업을 정리하고 카메라를 들었다. “오래도록 붓을 놓았기 때문에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사진을 자연스럽게 선택했다”는 그는 “산수화를 직접 그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산수화처럼 표현하는 게 아니라 붓 대신 카메라로 수묵 산수화를 만들어내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산 사진을 일반 사진용 종이가 아닌 한지에 인쇄해 전시한다. 작품에 담긴 눈이나 구름의 결을 한지가 가진 닥의 결이 표현해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임채욱은 2008년 강원 삼척시 월천리 솔섬을 촬영하면서 사진작가로 데뷔했다. 한국가스공사의 액화천연가스(LNG) 기지 건설로 솔섬이 파괴될 위기에 처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 찍은 작품들이었으나 솔섬 사진은 엉뚱하게도 영국 사진작가 마이클 케냐와 대한항공 사이의 저작권 분쟁으로 관심을 받았다. “지금은 다들 솔섬을 저작권 스캔들로만 기억한다”고 아쉬워한 그는 “제 설악산 사진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존해야 한다는 의미로 봐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3월 22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 이후 임채욱은 한국의 산을 하나씩 작업할 계획이다. 그는 “단순히 한국 산의 경관이나 미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산에 담긴 역사ㆍ문화ㆍ인문학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 산에 내재하는 숨은 가치들을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임채욱이 포착한 울산바위. 임채욱 제공
임채욱이 포착한 울산바위. 임채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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