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전적 명구를 빌어 말하자면, 지금 우리나라에는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한 때는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신성한 이름이었으나 이제 아득하게 잊힌 유령이 되어 떠돌 뿐이다. 고래 등 같은 저택이거나, 애옥살이 오두막이거나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밥상에 오르는 그 유령의 이름은 쌀이다. 쌀이 유령이 된 것은 모두가 그것을 불편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따져보면 누구나 쌀에 대해 마음의 빚이 있다. 사람들은 일단 빚쟁이는 피하고 싶어 한다. 되도록 눈도 마주치기 싫다. 그러니 유령이 되는 수밖에.
또 하나, 매일 밥을 먹으며 사람들은 그 밥이 쌀로 지어진 것을 알까? 아마 거의 모를 것이다. 밥을 짓기 위해 쌀을 씻는 당사자들 중에도 확실히 아는 사람은 드문 게 분명하다. 그렇다, 더 이상 밥은 쌀이 아니고 쌀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과장이 아니다. 누구든 생각해보라. 밥을 먹으며 단 한 번이라도 쌀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밥을 먹는 자라면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 내가 말하는 최소한의 예의는 대체 어떤 경로로 내 입에 밥이 들어오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유통경로까지 알려줄 지면은 없으므로 다만 올해 쌀값이 얼마인지, 그 가격에 쌀을 생산하는 농민들이 과연 ‘밥’을 먹고 살 수 있는지 한 번쯤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노동자들이 받는 최저임금이나 정리해고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고 언론에서도 자주 다룬다. 그렇다면 비록 ‘등외(等外)국민’이 되고 말았지만 농민에 대해서도 아예 눈과 귀를 막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 민중총궐기 때 물대포에 맞아 여전히 사경을 헤매는 백남기 농민이 왜 먼 전남 보성에서 서울까지 시위를 하러 왔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폭력이니 평화니 하는 공방만 있었을 뿐 수만 명에 이르는 농민들이 무엇을 외치고자 광화문으로 왔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쌀 때문이었다. 여러 농업문제 중에 요즘 가장 심각한 게 ‘밥쌀용 쌀 수입’이다. 아마 암호처럼 들리는 사람이 대다수일 게다. 쌀은 다 밥하는 거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쌀이 남아돈다는데 왜 수입까지 하는지 의아하기도 할 것이다. 저마다 손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으로 오 분만 찾아보면 알 수 있다. 오 분 정도 투자해서 조금이나마 마음의 빚을 더는 것도 괜찮으리라.
나는 농민이지만 벌써 십여 년째 논농사를 짓지 않는다. 남의 논을 빌려 짓다가 소작을 떼이게 되었다. 그 때도 이미 쌀은 돈이 되지 않았으므로 그다지 아쉬운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올해 쌀값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추락해버렸다. 황량한 들녘에 농민들이 걸어놓은 플래카드에 쓰인 대로 ‘개 사료보다 더 싼’ 쌀이 되었다. 대통령은 선거 때 21만 원을 공약했는데 쌀값은 20년 전보다도 싸졌다. 혹자는 시장 원리에 따라 정해지는 가격을 어쩌겠느냐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단언컨대 우리나라에서 쌀은 단 한 번도 시장에서 가격이 매겨진 적이 없다. 대체 쌀값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누가 가격을 조종하는지 알고 싶다면 역시 예의 스마트폰을 한 시간쯤 들여다보아야 한다. 세상 돌아가는 모든 이치를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니 어렵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에 기어이 논을 약간 마련하였다. 일 년 동안 논바닥에 땀을 쏟아봐야 남을 것이라고는 빈손도 아닌 적자가 되리라는 예상을 하면서도 나는 다시 논농사를 시작한다. 마치 자식에게 버림받은 어머니 같은 존재가 되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유령이 되었을지라도 저 좌우와 상하가 평등한 쌀(米)의 의미를 다시 만나볼 작정이다. 약삭빠르게 이윤을 좇는 이 세상에서 적자인 줄 알면서도 다시 볍씨를 뿌리는 농민들은 바보일까?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 바보들이 바로 이 땅을 지키는 마지막 유령들일지도 모른다.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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