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델견 뿌꾸(포메라니안·3세·수컷)입니다. 얼마 전 주인이 퇴근을 하면 반려견의 출근은 시작된다는 영상 ‘나는 오늘도 출근한다’에 당당히 주인공으로 출연해 나름 알려진 인기견이에요. 짖고, 돌고, “빵!”하면 쓰러지고 나의 능청스러운 표정 연기에 모두 흠뻑 빠져들었죠.
집은 충남 아산 도고면의 에덴애견훈련소입니다. 여기서 80여마리의 친구들과 살고 있어요. 처음부터 훈련소에서 살았던 건 아닙니다. 원래 일반 가정집에서 가족들, 포메라니안 여자 친구와 함께 살았는데, 워낙 활달한 성격인 개너자이저(개와 에너자이저의 합성어)인데다 영역표시를 하는 통에 나만 훈련소에 맡겨졌지요.
나는 집에 돌아갈 생각에 훈련소 선생님들로부터 열심히 교육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개월이 지나면서부터 훈련사들이 가족에게 연락을 해도 잘 닿지 않았어요. 결국 훈련소 식구가 되었지요. 근데 옆에 있는 온달이(코카스파니엘)를 포함해 훈련소에 버려진 친구들도 꽤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사실 이번 영상이 데뷔작이에요. 그 동안에는 훈련 공부나 행사 참여를 위해 훈련소를 찾은 사람들에게 특기를 뽐내는 활동을 해왔어요. 내 특기는 장애물 넘기입니다. 긴 통도 한 번에 통과하고, 높은 타이어 점프도 잘 해내지요. 몸은 작은 솜사탕 같지만 어찌나 빠른지 촬영하는 누나가 애를 먹을 정도에요.
훈련소에는 나보다 유명한 인기 스타견들도 많아요. 지난 해 개봉한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 출연했던 개리도 따로 가족이 있긴 하지만 이곳에서 훈련을 받았고요. 한류스타 비와 아이돌 그룹 멤버 크리스탈이 나온 드라마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에 ‘달봉이’역으로 나왔던 골든 리트리버 벤지(13세·암컷)누나도 3개월 때부터 이곳에 왔어요. 달봉이로 나와 수컷으로 아는 분들도 있어 속상해 하고 있지만 실은 각종 재연 프로그램에 단골로 출연한 베테랑 연기견이에요. 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미국 동물매개치료 단체인 델타소사이어티에서 매개치료견 훈련을 받았다는 거에요. 치매노인센터, 복지관을 방문하기도 하고, 또 대안학교 학생들이 훈련소에 와서 벤지 누나를 보고 쓰다듬으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고 해요. 벤지 누나는 워낙 성격도 좋고 사람을 좋아해서 금방 만난 사람의 마음을 여는 재주가 있어요.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 조연으로 출연한 진돗개 웅이(5세·수컷)의 사연도 소개할게요. 웅이는 떠돌이 개였는데 상가의 한 가게 가족이 마음에 들었는지 돌려보내도 계속 가게를 찾아와서 결국 가게 가족이 웅이를 받아들이게 된 경우라고 합니다. 가족이 아파트에 살고 또 운동을 많이 시키지 못하는 상황이라 웅이는 이곳에서 위탁 생활을 하고 있는데 가족들이 매번 웅이를 보러 찾아오는 것은 물론 때마다 간식 박스를 보내주고 있어요.
많은 분들이 모델이나 배우로 활동하는 개나 고양이가 어떻게 훈련 받나 궁금해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훈련하는 곳마다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간식, 칭찬 등을 통해서 훈련을 받아요. 강압적으로 하면 교육은 빨리 될 수 있지만 주눅든 표정연기밖에 안 나오거든요. 나는 소시지를 가장 좋아한답니다. “소시지는 뿌꾸를 춤추게 해요~”
내가 이번에 영상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애니픽쳐스라는 에이전시를 통해서 발탁된 것입니다. 연예인도 소속사, 에이전시가 따로 있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에요. 하지만 사람과 달리 개는 품종이 같으면 구분이 잘 안되기 때문에 이른바 출연료, 몸값을 올리기에는 어렵다고 하네요. 출연료는 출연 횟수나 방송의 성격에 따라 하루 기준 수십만원부터 수백만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방송이나 영화에 출연할 때 대부분 우리 같은 훈련 받은 개를 찾는 이유가 있어요. 집에서는 연기나 동작을 잘 했다고 해도 낯선 환경 속 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반복적으로 연기를 해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게다가 촬영 자체가 아무래도 배우들 위주이다 보니 촬영시간도 짧고 대기시간도 길어요. 그만큼 집중력, 체력도 좋아야 하지요. 나는 오로지 ‘훈련사 바라기’이기 때문에 훈련에 대한 집중력은 최고이고, 체력도 짱짱하답니다.
요즘 개나 고양이가 감초 역할에서 나아가 아예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TV 방송프로그램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해요. 훈련방법이나 촬영 시 처우가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제작 단계에서 학대행위가 있는 경우도 많고, 또 촬영 동안에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도 이후에는 관심 밖으로 사라지고 잊혀지면서 열악한 처우를 받는 것도 종종 확인되고 있습니다. 모델, 배우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가져주세요.
아산=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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