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작품의 역사는 보존이 아니라 파괴의 역사였다.”
파격과 도전으로 현대음악의 혁신을 이끌어온 세계적 지휘자이자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가 5일(현지시간) 독일 바덴바덴의 자택에서 운명을 달리했다고 6일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향년 90세.
이날 불레즈의 유족은 고인이 봉직해 온 파리 필하모닉을 통해 성명을 발표하고 별세 소식을 전했다. 이들은 “그를 알던 모든 이들과 그의 창조적인 에너지를 인정한 사람들에게 예술적 엄격함, 솔직함, 관대함 등 그의 존재는 언제나 강렬하게 살아있을 것”이라고 애도의 뜻을 밝혔다.
1925년 프랑스 루아르 몽브리종에서 태어난 불레즈는 천재성을 지닌 작곡가로 먼저 명성을 떨쳤다. 46년 미리니극장의 음악감독이 된 그는 의욕적인 창작 활동을 펼쳤다. 특히 55년 초연된 ‘주인 없는 망치(Le Marteau Sans Maitre)’는 전위 작품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송현민 음악칼럼니스트는 “고인은 당대 유럽 작곡계를 뒤흔든 앙팡 테리블로 이제는 현대음악사의 고전이 된 작곡가이자 지휘자”라며 “20대 고인이 ‘모든 오페라극장은 폭파하라!’, ‘위대한 작품의 역사는 보존이 아니라 파괴의 역사였다’며 추구한 작곡의 관심사는 총렬주의, 우연성, 전자음악까지 다양했다”고 말했다.
고인은 특유의 압도적 치밀함을 빛내는 지휘자로서 성공을 거두며 현대 음악계를 또 한번 놀라게 했다. 영국 BBC심포니, 미국 뉴욕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등에서 수석 지휘자와 음악감독 등을 지낸 그는 분석적이지만 생동감 있는 작품해석과 개성적 프로그램 편성으로 호평 받았다. 주요 레퍼토리는 스트라빈스키, 드뷔시, 말러 등이다.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는 “그는 털끝 하나만큼도 틀리지 않는 정확한 음감과 지휘 테크닉을 발휘해 오히려 싫어하는 이들은 인간미가 떨어진다고 비판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불레즈는 지난해 프랑스 음악계 최대 이벤트였던 파리 필하모니 콘서트홀 개관을 위해 30여 년 간 혼신의 힘을 쏟기도 했다. 그가 정치권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파리 최빈곤 지역에 세워 올린 이 건물은 변변한 콘서트홀 하나 없던 ‘예술의 수도’ 파리의 시민들에게 최고의 음향을 선물했다.
송현민 음악칼럼니스트는 “혁신을 추구했던 그가 지휘봉을 쥐면서부터는 과거를 껴안는 방향으로 궤도를 조금씩 수정했고 이후 그의 음악에는 전통과 혁신의 균형을 추구하는 의지가 느껴졌다”며 “작곡가, 지휘자, 이론가, 현대음악 기획자로, 또 현대음악 전문 악단인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의 이끌면서 고전 레퍼토리와 현대음악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한 독보적 인물”이라고 평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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