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영화 같은 데서 배우가 가슴 미어지는 눈물 연기를 실감나게 선보이면 연기를 잘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감정의 일차원적인 측면만 자극하면서 눈물 짜내는 게 좋은 연기만은 아니다. 배우가 우는 건 진심보다는 훈련된 기술에 의해서다. 좋은 배우들은 몸의 어느 부위를 쓰면 어떤 감정이 작동하는지 체화하고 있다. 연기는 배역에 온몸 바치는 게 아니라 배역과 연기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엄정한 통제에 의해 설득력을 갖는다. 우는 연기를 할 때, 배우는 울음에 몰입하는 동시에 울고 있는 자신을 관찰하고 지휘한다. 전문 배우도 아닌 주제에 이런 소릴 하는 게 주제넘을 수도 있다. 허나, 연극판을 잠깐 기웃거린 경험만 가지고 젠 체하는 게 아니다. 일상의 얘기를 하려는 거다. 살면서 어떤 감정의 극한을 경험하는 순간, 흔히 가슴이 터질 것 같다고 말한다. 물리적으로 사실이다. 가슴이 터지면서 여태 숨겨둔 말, 화, 눈물, 콧물 다 터진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때에도 그러고 있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숨어있는 누군가가 있다. 평소엔 안 보이나 감정이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갈 때면, 그 수위와 밀도를 측정하면서 자중케 하는 또 다른 자아. 그냥 이성의 본능적인 자기 통제력일까. 단지 그것만일까. 아니라고 믿는다. 감정과 이성이 원형에서부터 나눠져 있는 건 아닐 거라 생각하니까. 그럼 뭘까. 올해의 숙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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