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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캥거루의 집, 사람의 집

입력
2016.01.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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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날 거미는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를 포장(?)하고 있었다. 다가서는 나를 감지한 거미는 하던 일을 멈추고 옆으로 피하더니, 잠시 뒤 슬며시 다가와 다시 포장을 시작했다. 하필이면 이때 재채기가 나오고. 위협을 느낀 거미는 멈칫하며 피하려다 마음을 바꿨는지 서둘러 포장을 끝낸다. 그리고는 포장된 먹이를 순식간에 엉덩이에 걸더니 도르래를 타듯 줄을 타고 은신처로 이동했다. 마치 사람이 짐을 꾸려 어깨에 이고 가듯 천연덕스러웠다.

긴호랑거미.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긴호랑거미.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위험을 감지하고 판단하는 합리성, 위험 속에서도 작업을 계속하려는 의지, 그리고 빠르게 먹이를 꾸려 은신처로 이동하는 종합적 판단능력까지. 나와 거미는 얼마나 다를까? 어디까지가 본능이고 어디까지가 이성일까?

철학자 베르그송은 여타 생명과 사람의 차이를 도구를 통해 설명한다. 다른 생명은 몸을 도구로 다듬어 쓰지만, 사람은 몸 밖에 도구를 만들어 쓴다. 이를테면 가재는 손을 가위로 만들지만, 사람은 가위를 만들어 손으로 쓴다. 이때 사람은 이성을, 짐승은 본능을 이용한다는 것이 베르그송의 탁월한 직관이다. 사람의 도구 중 유별난 것이 옷과 집이다. 짐승은 자신과 자연 사이에 어떤 가공물도 두지 않는다. 곰은 기껏해야 자신의 피부를 털옷으로 바꿀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과 자연 사이에 집을 세워 벽을 친다.

베르그송에게 생각이란 별 것이 아니다. 그에게 사유란 생명이 어떤 자극에 대응하는 과정이다. 사람은 이 과정이 매우 길다. 먹을 것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짐승과 이 음식을 먹으면 어디에 좋을까 궁리하는 인간은 다를 수밖에 없다. 결국 인간의 사유능력은 자연에 반응해 도구를 만들며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탁월한 재능에는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다. 무언가를 만들자면 대상을 고체로 분리해 나누어야 한다. 한없이 이어진 시간이나 바다로는 무엇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흐르는 물도 한 컵 두 컵 나누어 생각하고, 흐르는 시간도 한 시간 두 시간 나누어 덩어리로 만들어야 한다. 다른 생명은 자신을 변화시켜 세상의 흐름에 녹아들지만, 오로지 사람만이 세상의 흐름을 끊고 끊어진 재료로 도구를 만들고 흐름이 끊긴 자리에 도구를 둔다. 땅의 흐름에서 철광석을 분리해 자동차를 만드는 식이다. 생명을 흐름으로 파악하는 베르그송은 무엇이든 나누기만 하는 인간이 자칫 생명을 이해하지 못할까 걱정한다.

자연의 흐름이란 흐름을 모두 끊고 세워진 아파트는 고체 본능의 절정이다. 102호 103호, 한 컵 두 컵, 물을 세듯 건물까지 쪼개어 인식하는 인간은 나와 집과 자연이 하나로 이어지는 생명이라는 것을 깨닫기 어렵다. 이런 눈으로 보면 이성에만 의지한 문화는 위험하다. 내 밖에 보이는 모든 것을 도구로 삼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국에는 사람도 나와 이어진 흐름이 아니라 내 밖에 있는 도구가 될 것이다.

미국에서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정부의 부양 정책으로 오르기만 하던 주택시장이 한풀 꺾이면서 주택시장이 위태롭다는 전망도 나온다. 떨어지는 집값이 칼날이 되어 사람을 해칠까 두렵다. 우리가 이런 걱정을 하게 된 것은 집을 생명의 흐름에서 떼어내 오로지 경제 도구로 다룬 때문이다.

사람들은 짐승에게도 인간과 같은 집이 있다고 착각한다. 아닌 게 아니라 캥거루 배에 달린 아기집과 나뭇가지에 걸린 새 둥지가 때로 집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이 아닌 어떤 동물의 집도 자연과 생명의 흐름 속에 있다는 점에서 사람의 집 아파트와 전혀 다르다. 더구나 프리미엄이라니!

내가 한옥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까닭은 전통한옥에는 자연과 이어진 생명의 흐름이 있기 때문이다. 한옥은 생명을 쪼개는 어떤 것에도 반대한다. 올해부터는 주택이 단순한 경제정책의 수단이 아니라 생명이 흐르는 곳으로 여겨지기를. 그래야만 우리는 고립으로 시들지 않을 수 있다.

이상현 한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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