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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연구자와 폭로자

입력
2016.01.0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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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화제가 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이하 ‘지방시’)를 읽었다. 여러 언론에서 “사려 깊은 반성” 같은 호평을 내세웠지만, 외려 이러한 반응은 학계 비판의 궁핍한 현 주소를 보는 듯했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읽어내야 할 것은 한 연구자의 용기가 아니다. 나는 학계가 오랫동안 개인에게 연구자와 폭로자라는 위치를 동시에 부과하는 지점을 짚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강사.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시간강사.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먼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자. 학계 안에서는 공개적으로 내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전혀 없는가. 아니다. 가령 기업화된 대학 체제에서 자신의 사유를 제한하는 논문식 글쓰기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나왔다.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비판은 비판 대상인 논문이란 방식으로 이뤄진다. 내부의 모순을 비판하는 행위, 그 비판도 결국 좋은 연구논문이어야 하는 목표가 겹쳐진 상황. 이 규범을 재빨리 파악해야 살아남는 연구자들은 훌륭한 논문을 내고자 전형적인 연구 전략을 쓴다. 자신의 주변을 생경하게 묘사하기. 학문하는 사람들의 언어는 곧잘 쉽다/ 어렵다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보다 주시해야 할 문제는 자신과 타인의 생활을 마치 처음 목격한 것처럼 연구자들이 연극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듣도 보지도 못한 언어를 구사하는 부족민과의 만남은 연구자에게 낯섦의 쾌감을 준다. 반면 동료 연구자라는 부족민과의 만남은 연구자에게 냉소라는 좌절을 준다. ‘아, 재미있어요, 예리한 비판이에요’란 표정 속에 ‘왜 다 아는 이야길 하고 난리야’라는 마음을 담아. 근데 연구자들이 짓는 냉소는 학계의 ‘끝판왕’이 아니다. 나는 오늘날 학계에 도사리고 있는 적은 ‘진솔한’ 폭로자라는 개인을 만들어내는 구조라고 생각한다.

어느덧 철 지난 용어가 되었지만, 신자유주의는 ‘인격화’라는 형태로 그 위용을 계속 떨치고 있다. 사람의 품성, 그 품성이 빚어내는 감수성, 감수성이 챙기는 양심은 신자유주의의 대항마가 아니라 친구가 되었다. 오래 전 양심에서 빚어진 고발은 난국을 타개할 인간의 무기였지만, 한나 아렌트도 얘기했듯 양심은 비정치적 무기일 뿐이다. 신자유주의는 개인의 양심을 비웃는 것을 넘어, 이 비웃음마저 시시하다는 생각의 경로를 터놓았다. 더 나아가 개인의 양심이 선한 인상 자체로만 소비될 수 있게 감정구조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관심은 양심 너머 정치적ㆍ경제적 모순이 아니라, 양심을 지키는 진솔한 인격체에 머문다. 신자유주의는 얼마든지 이런 인격 소비가 반가울 것이며, 학문사회의 모순을 밝히는 개인의 인격적 고백에도 까딱하지 않을 것이다.

‘지방시’는 학문 활동이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적 모순을 날 것 그대로 섬세하게 담아내려 애썼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인문학을 학생과 교수가 주고받는 훈훈한 품성으로 쉽게 갈음한다. 저자인 309동1201호는 연구실ㆍ강의실 풍경 속에서 “부끄럽다” “배운다”란 표현을 성찰의 언어로 끄집어낸다. 허나 그의 성찰은 더 부딪치고 갈등으로 풀어내야 하는 순간을 개인의 인격으로 막는다.

신자유주의가 끊임없이 불러내는 개인의 인격적 고백은 지속적으로 어떤 장면을 제공한다. 그 장면은 한때 안 그랬던 집단,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는가라는 이야기로 채워진다. 사람들은 그 이야기에 길들여지고 스릴을 느낀다. 이내 자신은 괴물이 되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을 점검한다. 이는 평소 해오던 바를 달리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골라내고 지키는 수동적인 감정 상태, 즉 양심의 한계와 만난다. 도덕적 괴물이 된 대학과 이를 멀리하는 개인의 양심. 신자유주의는 우리가 이 윤리적 장면에 오래 머물 심성을 가지길 유도한다. 폭로자의 진솔함에 감동하며, 용기에 박수를 치는 사이 왜 연구자가 졸지에 폭로자로 취급받아야 하는지, 근본적인 물음은 이미 곁을 떠났다.

김신식 감정사회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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