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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정부가 안이했다

입력
2016.01.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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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위안부 문제가 전광석화처럼 합의에 이르게 된 과정이 여전히 의문이다. 정상회담 이후에도 한일청구권 협정 기속(羈束) 문제로 양보가 없었고, 일본이 ‘소녀상 철거’ ‘최종해결 담보’를 추가로 들고 나오면서 분위기는 더 어두워진 상황이었다. 그랬던 것이 느닷없이 일본 언론을 통해 한일 외무장관 회담이 보도되고, 하지도 않은 협상의 구체적 내용까지 흘러나와 어안을 벙벙하게 했다. 더군다나 일본 언론의 예단은 협상 결과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협상 배경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 더욱 이해 못할 건 일본의 행태다. 타결 직후 소녀상 철거가 기금 출연의 조건이라는 둥, 한국이 위안부 자료의 유네스코 등재를 보류키로 했다는 둥 합의문에도 없는 내용이 일본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이렇게까지 한 이상 약속을 어기면 한국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끝난다”는 아베 신조 총리의 협박성 발언까지 나왔다. 우리 정부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기시다 후미오 외무성 장관은 4일 또 다시 서울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이 “적절히 이전될 것이라고 인식한다”고 언급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행동이다.

▦ 지난해 5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종전 70주년을 맞아 “역사에 종지부는 없다”며 희생자를 추모했다. 1월에는 폴란드의 나치 수용소에서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것은 모든 독일 시민의 도덕적 의무”라고 했다. 1970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의 유대인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자 유제프 치란키에비치 폴란드 총리는 차 안에서 “용서한다”며 브란트 총리를 껴안았다. 지난해 8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서대문형무소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은 뒤 독립투사의 영혼을 기리는 큰절을 올렸다.

▦ 아베 총리의 일본에 애초 이런 사죄와 용서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마치 쫓기듯 일본에 면죄부를 준 듯한 협상 과정은 납득하기 어렵다.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고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도 온데간데 없다. 대학생들이 합의 폐기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하고, 학계도 합의의 합목적성을 비판하는 등 후유증이 잦아들지 않는다. 합의를 되돌릴 수는 없더라도 협상 과정을 투명하게 밝혀 불신을 해소하는 게 급선무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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