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대란’이 현실화하기까지는 중앙정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한 지방의회의 책임도 크다. 서울, 광주, 전남 등 야당이 다수당인 지방의회 3곳은 어린이집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시도교육청이 편성한 유치원 분마저 삭감해 누리과정 예산을 ‘0’원으로 만들었고 경기도의회는 사상 초유의 준예산 사태를 촉발했다.
반면 여당이 다수당인 대구와 경북, 울산, 경남 등 영남권 지방의회는 해당 교육청이 낸 예산안에 준해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누리과정 예산을 일부 또는 전부 반영했다. 아이들의 보육비 문제가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보다는 지방의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갈린 꼴이 됐다.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까지 칼질한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의 속내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책임을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공약으로 표만 얻고 그 비용은 가난한 지방에 떠넘긴다’는 공격이 먹히고 있다고 본 것이다.
지방의 열악한 재정상황에는 야당과 공감하면서도 막대한 누리과정 예산을 꾸역꾸역 집어넣은 영남권 지방의회에도 여당인 새누리당의 논리가 그대로 스며들어있다. 새누리당은 야당의 누리과정 예산 삭감을 ‘정쟁’의 하나로 몰아 부치면서‘보육대란’이 총선 판세에 미칠 파장을 미리 차단하려는 애쓰는 모습이다. 이번 사안을 두고 예산집행 여유 등을 찬찬히 따져본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정치적 견해차는 6대4로 그 수가 팽팽히 갈려있는 경기도의회에서 거세게 충돌했다. 지난해 12월31일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누리과정 유치원예산 삭감을 강행 처리하려 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하며 실력 저지에 나섰던 것이다. 당시 양당은 8명이 부상하는 집단 난투극 끝에 경기도 사상 초유의 준예산 사태를 불러왔다.
더불어민주당은 5일 준예산 사태 해소를 위해 다시 임시회를 소집했으나 누리과정 문제에 대한 입장 차가 여전해 여·야 의원들간 집단 난투극이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현삼(안산7) 대표의원은 “누리과정은 대통령 공약인 만큼 임시회에서 ‘0원’인 상태로 예산안을 처리할 방침”이라고 했고, 새누리당 이승철(수원5) 대표의원은 “예산안을 기습 처리하려 한 민주당의 사과 없이는 어떤 협상도 없다”고 맞받았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