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와 마크 주커버그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하버드대를 중퇴한 IT산업의 영웅으로 순식간에 세계적 갑부 대열에 올랐다. 또한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을 자기 가족 소유로 삼지 않았다. 거의 전 재산을 쏟아 부어 재단을 세우고, 미래 세대를 위한 난제를 해결하는 데 기금을 쓰도록 했다. 히피 정신을 바탕에 깔고 있는 실리콘밸리 문화의 본류를 보여 주는 한 모범이다.
물질을 초개로 여기면서 인간을 돈에 앞세우는 일은 어지간한 정신적 두께 없이 상상조차 어렵다. 두 사람 모두 독서로 다진 내면의 힘이 없었다면 아마도 가능할 수 없었을 것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빌 게이츠는 매주 두 권 정도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서 공개하는 파워블로거이다. 마크 주커버그 역시 2015년을 ‘책의 해’로 정한 후, 두 주에 한 권씩 묵직한 책을 읽고 소개함으로써 전 세계 독서 열풍을 이끌었다.
리더의 ‘읽기’는 세상을 두 번 바꾼다. 인류의 중대한 문제를 통찰하고 해결하는 힘을 부여함으로써 세상을 한 차례 바꾸고, 부(富)를 세상에 돌려주는 훌륭한 방법을 창조함으로써 또 한 차례 바꾼다. 리더는 이끄는 사람(Leader)이자 읽는 사람(Reader)이다. 책을 읽는 힘으로 조직을 이끌고, 조직을 이끄는 정열로 책을 읽는다. 독서와 경영의 선순환이야말로 ‘리더스포럼’의 목표다.
생존 경영에 치인 삶에 균형을 찾다
“최고급 지식과 정보가 머릿속에 있어야 최상의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작은 기업의 사장일수록 지혜가 필요합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권 이상 책을 읽지 않으면, ‘정보의 비대칭’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압축된 지식을 담은 책을 통해 작은 기업은 큰 기업과의 정보 격차를 해소해야 합니다. 정보의 격차는 기회의 격차를 가져오고, 기회의 격차는 부의 격차를 불러옵니다. 공부하지 않으면, 간격이 자꾸 벌어질 뿐입니다.”
리더스포럼 박윤근 회장이 말한다. 박 회장은 환경 관련 시스템 업체인 오토코리아 대표다. 매달 둘째 주 화요일, 서울 중구 중림동사회복지관에는 중소기업 최고경영자들이 모여든다. 김밥 한 줄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면서, 저자 강연을 듣고 토론을 나눈다. 회원은 40여 명, 한 번 모일 때마다 스무 명쯤 나온다. 책은 두 달 전에 선정한 후, 한꺼번에 구입해서 나눠준다.
처음에는 한 경영자포럼에서 만나 동호회로 시작했지만, 2012년 따로 나와 독자적으로 운영된 때로부터도 세 해가 훌쩍 넘었다. 강연이나 포럼을 전문으로 하는 외부업체 도움 없이 자율로 운영되는 경영자 독서 모임이 이만큼 오래 지속된 예는 흔하지 않다. 사업이란 늘 변화무쌍해서 서로 일정을 맞추기 어렵고,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한두 번씩 거르다 보면 모임 전체가 무너지기 일쑤다. 여느 독서공동체와 마찬가지로 고비고비를 넘어서는 게 무척 힘들었을 터이다. 금융 솔루션 회사인 개미집소프트 박종찬 대표가 말한다.
“자발적으로 찾아왔습니다. 살벌한 기업 현장에서 생존을 위해 버티다 보니 저 자신을 성찰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오랫동안 나 자신을 놓고 살다 보니 제가 피폐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책모임을 알아보다 여기 나오게 되었죠. 모임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회장님 열정 덕분입니다. 책도 고르고, 강연자 섭외도 도맡고, 회원도 챙기고…. 빠지고 싶어도 정성이 미안해서 그럴 수 없었죠. 그런데 책을 계속 읽다 보니까, 재미가 났습니다. 텔레비전 보는 시간보다 책을 가까이하는 시간이 늘었죠. 삶에 균형이 잡혀가는 느낌입니다. 물론 경영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경영자라면 항상 회사일로 인한 고민을 떨칠 수 없죠.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그 고민을 객관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면 내 속에 있는 심판관이 일어서 판단을 내려줍니다.”
열정은 민들레 홀씨 같다. 바람이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온 들판으로 씨앗을 퍼뜨린다. 거대한 용기를 이룩하고 드넓은 아량을 마련하여 자꾸자꾸 일을 추진한다. 박 회장은 경영자들 사이에서 독서 전파자로 이미 이름이 높다. 책을 읽다 감명을 받으면 수십 권씩 구입해 지인들한테 선물하기도 한다. 리더스포럼도 ‘같이 읽기’를 평생 실천해 온 박 회장의 열정을 주춧돌 삼아 우뚝 설 수 있었다. 박 회장이 말을 덧댄다.
“은행에 다니다가 퇴직한 후, 1991년부터 무역회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남미 쪽으로 일을 보러 다녔는데, 가는 데만 서른여섯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때는 비행기 좌석에 스크린이 없었죠. 멍하니 앉아 있는 게 싫어서, 책을 한 보따리씩 가지고 다녔습니다. 주로 소설책이었죠. 대하소설이 좋았습니다. 출장 갔다 올 때마다 거의 한 세트씩 읽은 것 같습니다. ‘삼국지’ ‘수호지’ ‘토지’ ‘태백산맥’ 등을 섭렵했어요. 시드니 셸던 소설도 모조리 읽었죠. 그러고 나니 읽는 힘이 생겼습니다. 슬슬 다른 분야 책도 읽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책이 곁에 없으면 마음이 헛헛하더라고요. 내친 김에 골프도 끊었습니다.”
사업의 미래 고민한다면 독서가 정답
사업가가 골프를 버리는 것은 애연가가 담배를 끊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술친구 모임에서 홀로 금주하는 것과 같다. 사업에 가끔은 필요할 수 있고, 운동 삼을 수 있어서 유혹도 잦은 편이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가 극심한 현대사회에서 리더는 내면에 지식과 정보를 충전할 것을 항상 요청받는다. 코닥이나 노키아가 몰락한 것처럼, 혁신의 파도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밀려와 기존 사업모델을 뿌리째 파괴한다. 사업의 미래를 경영자가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책이다. 원격감시제어기술업체인 다담마이크로의 전익수 대표가 이야기한다.
“정보기술 분야에서 사업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전망해야 합니다. 50년 후 세계를 내다보고 그 세계를 현실로 느낄 줄 알아야 5~10년 후의 일을 비즈니스로 풀어갈 수 있죠. 그런 힘은 책을 직접 읽을 때 생깁니다. 경영자들이 대개 그렇지만, 처음엔 저 역시 강연을 쫓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아무 준비 없이 가서 강연만 들으니까, 학원에서 강사를 모셔다가 족집게 과외를 받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뭔가 아니다 싶었죠. 자율 학습이 필요했습니다. 친구 소개로 독서 모임에 나오면서부터는 짬을 내서 더 많은 책을 읽으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과제 도서 말고 같은 저자의 책을 한 권 더 읽고 옵니다. 그러면 토론이 깊고 재밌어집니다.”
리더스포럼은 한 해에 여덟 번은 책을 읽고 저자를 초청해 토론하지만, 나머지 네 번은 회원이 주제를 잡아 스스로 연구한 후 발표한다. 전 대표는 평소에 흥미를 품었던 평행우주를 공부해서 발표했다. 온갖 책을 읽고 요약해서 정리하는 데 서너 달 걸렸지만, 회원 반응이 뜨거웠고 질의 응답도 유난히 폭주했다. 회계법인 딜로이트의 박종우 상무가 말을 잇는다.
“아이를 생각해서 모임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열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저한테는 부친의 이미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아버지 역할을 책을 읽어서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 책을 읽으려니 제대로 읽고 있는지 겁도 나고 다양한 책도 접하고 싶어서 친구 추천으로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한때 수유너머나 오마이뉴스에서 하는 공부 모임에 나간 적도 있습니다. 이 모임에 들어와서, 주제 도서와 연관된 책들까지 같이 읽으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이한테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거실에서 혼자 책을 보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감동했습니다.”
동기만큼이나 나이도 다양하다. 30대에서 70대까지 어울려서 책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 선배는 후배로부터 재기를 보충하고, 후배는 선배로부터 지혜를 이어받는다. 경영자는 아무래도 고독하다. 회사에서 직원을 상대로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아무 모임에서나 마음을 내비치기도 어색하다. 독서공동체를 이루어 책을 놓고 토론하면, 그 내용에 걱정을 얹어서 자연스레 풀 수 있다. 모임을 거듭할수록 갈등은 흩어지고 내공은 쌓이니 열의가 저절로 오른다. 책을 읽고 감동한 구절을 서로 공유하는 소셜 독서 플랫폼인 원센텐스를 운영 중인 이가희 대표가 말을 이어간다.
“모임에 나온 지 일곱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책보다 사람들한테 빠져들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수많은 난관을 헤쳐온 분들의 경험과 지혜로부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저는 잘 안 풀리면 책을 읽는 편입니다. 더욱 다양하고 폭 넓게 읽다 보면 거기에서 어떤 해결책을 찾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모바일 시대이고 스낵 컬처가 유행이라 할지라도,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습니다. 책은 앞으로 적어도 50년간은 가장 강력한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책은 힘이 세다. 간결하고 효과적으로 지식을 집약함으로써 깊이를 확보한다. 구글에서 한글로 루브르박물관을 검색하면, 48만 9,000가지 정보가 뜬다. 이 결과는 독자를 선택의 지옥에 빠뜨린다. 네이버도 대동소이하다. 게다가 검색을 통해서 짧은 시간 안에 단편적, 분산적 정보가 아니라 입체적, 종합적 정보를 업데이트해서 얻을 가망성은 별로 없다. 편집을 거쳐 정제된 고급 정보는 여전히, 어쩌면 앞으로도 오래도록 책의 형태로만 존재할 것이다. 박 회장이 힘주어 말한다.
“리더는 가만히 있기만 해도 에너지를 뿜어야 합니다. 그 에너지는 내면에 쌓인 지식의 힘으로부터 나옵니다. 사람이 기가 충만해지려면 책을 읽는 게 우선입니다. 공부하지 않으면 내적인 활력을 얻을 수 없습니다. 지식에는 수확체감의 법칙이 따르지 않습니다. 한 번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지혜를 축적하는 데 쓰지 않으면, 어떤 사업도 전망이 밝을 수 없습니다. 독서는 경영자의 의무입니다.”
장은수ㆍ출판평론가(순천향대 미디어콘텐츠학과 초빙교수)
◆리더스포럼이 CEO와 함께 읽고 싶은 책
호암 이병철 회장은 “나라는 인간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 ‘논어’라고 했다. 중소기업 최고경영자에게 새해 첫 책으로 ‘논어’를 읽을 것을 권한다. 경영의 근본은 수기치인(修己治人)에 달렸는데, ‘논어’는 과연 인간 형성의 책으로 으뜸이다. 동양 지혜의 정수이자 인간 경영의 고전이다. 이한우의 ‘논어로 논어를 풀다’(해냄)는 해석이 신선하고 초보자가 읽기 쉽도록 자세히 풀이되어 있어 입문하기 좋다.
이한우, 논어로 논어를 풀다(해냄, 2012)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박세일 옮김, 비봉출판사, 2009)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이덕환 옮김, 까치, 2003)
정제원, 교양인의 행복한 책읽기(베이직북스, 2010)
최인철, 프레임(21세기북스, 2007)
마이클 루이스, 빅숏(이미정 옮김, 비즈니스맵, 2010)
장동인, 이남훈, 공피고아(쌤앤파커스, 2010)
안병식, 사막에서 북극까지 나는 달린다(씨네21북스, 2012)
조지 오웰, 동물농장(도정일 옮김, 민음사, 1998)
알렉상드르 뒤마, 몬테크리스토 백작(오증자 옮김, 민음사, 2002)
공동기획 : 한국일보ㆍ책읽는사회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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