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크리스마스 연휴기간 인천공항을 통해 홍콩을 다녀오려다 낭패를 당할 뻔 했다. 여유 있는 출국 수속을 위해 출발 2시간30분전에 공항에 도착했음에도 하마터면 항공기 탑승시간을 놓칠 뻔 했다. 출국객이 너무 많은 탓도 있었지만 짐 통관, 세관 검색, 출국 신고 등의 수속과정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각종 평가에서 10년 연속 세계 최고의 공항으로 평가 받았다는 인천국제공항공사의 홍보문구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사흘 뒤 홍콩 첵랍콕공항에서 한국으로 들어올 때는 인천공항보다 많은 인파가 붐볐음에도 20분 남짓 만에 모든 수속이 마무리되는 것을 보면서 또 한번 놀랐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두 라이벌 공항 중 어느 쪽에 높은 점수를 줄 지는 두 말할 것도 없다.
인천공항에서 겪었던 불안감은 기어이 현실로 다가왔다. 3일 개항 이래 하루 최다 여행객인 17만6,000여명이 인천공항에 몰리면서 수하물처리에 과부하가 걸려 160편 가량의 출도착이 무더기로 지연됐다. 인천공항공사는 뒤늦게 사상 최대 여객에 대비, 공항 및 항공사의 운영 인력을 사전에 충분히 배치하지 못한 점이 있다고 해명했지만 10년 들인 공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꼴이 됐다. 겨울 성수기를 맞아 여행객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같은 사고가 되풀이될 개연성이 높지만, 현재로선 뾰족한 해결책은 없어 보인다.
되짚어 보면 인천공항 사고는 운영주체인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의 연이은 낙하산 인사가 빚어낸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타 공기업 사장직이 그렇듯 집권층의 논공행상 자리쯤으로 여겨지다 보니 비전문가인 정치인들의 임시 보금자리로 전락했다. 정창수 전 사장은 강원지사에 출마하겠다며 10개월 만에 사장직을 내팽개쳤고, 박완수 전임 사장도 총선을 앞두고 지난달 19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박 전 사장 역시 재임기간은 14개월에 불과했다. 차기 사장 역시 정권에서 낙점한 정치인 출신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 마당이니 아무리 바쁜 연말연시라고 해도 임직원들의 관심이 공항 쪽에 쏠릴 리가 만무하다.
낙하산으로 들어온 공사 사장들은 단기간 실적을 내기 위한 수법으로 비정규직과 아웃소싱을 즐겨 활용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김상희, 강동원, 김경협 의원 등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노동자는 14.1%에 불과했고, 85.9%가 비정규직인 외부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6배를 넘는 기형적인 구조다 보니 수하물 실종 같은 사고는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예견된 인재였던 셈이다.
바야흐로 항공업계의 무한경쟁시대가 도래했다. 저비용(LCC)항공의 급부상으로,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항공 노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국내에서도 6번째 LCC항공사가 조만간 설립될 예정이다. 항공노선의 팽창은 각국의 관광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런 배경에서 각국 공항의 경쟁도 지금까지 상상한 것과는 다른 양상으로 펼쳐질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 대다수 지방공항이 LCC항공의 성장에 힘입어 만년 적자에서 벗어나 모처럼 기지개를 펴고 있는 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한국과의 경쟁에서 뒤지던 일본 도쿄의 나리타공항이 지난 해 LCC항공 전용 터미널을 개장했고, 오사카 간사이공항 역시 LCC항공 전문공항으로 방향을 전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 역시 LCC항공을 미래먹거리로 키우기로 하고 지방공항과 연계를 모색 중이다.
항공업계의 지각변동에 따라 각국 공항의 자리매김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이지만 인천공항의 역할이 부각되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다. 지금이야말로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조직 재점검이 필요한 시기다. 이를 위해선 정권공신, 정치인이 아니라 진정한 공항 전문가를 차기 사장으로 선임하는 상식적인 인사가 우선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창만전국부장 cmha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