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신인 등 발 묶인 사이 지역구 곳곳 돌며 ‘의정보고회’
대한민국에서 선거구가 없어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초래한 현역국회의원들이 정치신인이나 원외 인사들의 선거운동을 묶어놓고 자신들만 의정보고회를 빙자한 선거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원외 인사들이 꼼짝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 두 차례 모임을 하거나 보고서를 돌리는 정도가 아니라 선거구 구석구석을 훑고 다니는 것은 후안무치 하다는 여론이 높다.
새누리당 이병석 국회의원(포항 북)은 5~13일 경북 포항시 북구의 15개 읍면동 전체를 순회하며 의정보고회를 열고 있다. 읍면사무소와 주민센터 강당을 빌려 주민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의정활동을 설명한다. 사실상 선거운동이다. 새누리당 강석호(영양·영덕·봉화·울진)의원은 이미 영덕은 물론 울진과 영양, 봉화 등 4개 지역을 돌며 의정보고회를 열고 있다. 지난달 23일부터 시작해 지역구 전체를 돌고 있으며, 보고회 기간도 무려 20일이나 된다.
이들 현역의원들은 의정보고회에서 지역구 국비예산 확보 현황과 입법 실적, 민원처리 결과 등 의정활동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주민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치적을 알리고 있다.
이 같은 행태에 대해 지역 정치신인이나 일반 유권자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를 일으킨 역사의 죄인들이 자숙해도 시원찮을 판에 자신들만 사실상의 선거운동에 몰두할 수 있냐는 것이다. 선거구가 사라지면서 지난 1일부터 예비후보 신규등록이 불가능해졌고, 지난해까지 등록한 예비후보들도 선관위의 ‘묵인’ 속에 제한적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특히 총선 출마를 위한 공직사퇴시한(14일)이 임박해짐에 따라 그때까지 선거구획정이 되지 않으면 공직에서 사퇴하고도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벌어진다.
예비후보 A씨는 “여야 합의 실패로 선거구가 없어져 정치 신인들은 혼란에 빠뜨려놓고 현역의원들은 동네 구석구석을 돌며 의정 보고를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선관위나 정부 차원에서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예비후보 B씨는 “이병석 의원 같은 경우 선거구 획정을 논의하는 정개특위의 위원장이 아니었냐”며“선거구 획정 지연 사태가 현역의원들에게는 반사이익이 되고 있어 오히려 이 같은 상황을 기회로 보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현역국회의원들의 자성을 촉구했다.
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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