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윤석열이 빠졌구나….”
얼마 전 검사와 기자 몇 명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차기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후보군을 꼽아보다가 어느 검사가 문득 이런 탄식을 했습니다.
사법연수원 기수 순서로 지난해 22기가 3차장을 했으니, 올해는 통상대로라면 23기 차례.(물론 지금은 22기에서 한차례 더 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23기 선두주자들을 몇 명 꼽아보다가, ‘진짜’ 선두주자였던 윤석열 대구고검 검사(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장)를 빼놓고 있었다는 것이 떠오른 것입니다. 그는 이제 검찰 내 주요 보직에서 당연히 제외되는 인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죠.
한 유능했던 검사의 몰락한 현재를 놓고 많은 가정들을 생각해봤습니다. 윤 전 팀장이 만약 국정원 사건을 맡지 않았다면. 아니 맡았지만 윗선에서 하라는 대로 ‘대충’수사하고 상부와 마찰을 빚지 않았다면. 또 윤 전 팀장에게 바람막이가 되어줬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사퇴하지 않았다면. 더 거슬러 올라가 국정원이 지난 대선 시즌에 정치에 개입하는 댓글만 달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당연히 중앙지검 3차장으로 올해, 아니면 내년에 입성했을 겁니다.
중앙지검 3차장 자리는 각 기수에서 최고의 특별수사통 검사(권력형 비리 사건을 주로 파헤쳐온 검사)에게 주어지는 영광의 자리입니다(물론 예외가 없었다고 할 순 없죠). 국내 최대 수사기관인 중앙지검의 특수1ㆍ2ㆍ3ㆍ4부 강력부 등 인지부서의 수사를 지휘하죠.
윤 전 팀장은 특수통 검사 라인의 적자(嫡子)로 꼽혀왔습니다. 대검 중수1ㆍ2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거치며 수많은 권력형 비리 사건을 수사했습니다. 평검사 시절부터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의 실세 비리 수사에 투입됐고,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신정아씨 비호 의혹, 현대자동차 비자금 의혹 사건, LIG 그룹의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 의혹 등이 그의 손을 거쳐갔습니다.
그의 경력을 살펴보면 그를 좌천시켜 수사할 수 없는 보직에 묶어두는 것은 검찰 조직으로서도 손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워낙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었던 만큼, 어느새 윤석열이라는 이름에도 외부로부터 정치적인 색이 덧씌워진 듯합니다. 하지만 이념에 따라 편가르기 좋아하는 시각을 벗어 던지고 보자면, 비리 수사를 못하게 하는 권력과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검사의 싸움이었지 ‘윤석열은 누구 편이냐’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2013년 국정원 사건을 지휘하다 법무부와 마찰을 빚었던 채동욱 총장이 혼외자 파문으로 쫓겨나듯 사퇴했을 때, 또 윤석열 팀장이 국정원 수사를 사실상 막는 수뇌부와 대립하다 징계를 받았을 때, 검찰 안팎에서는 이런 말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채동욱 총장도, 윤석열 팀장도 아마 성향으로 봤을 때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 찍었을 사람들이다”라는 말이었죠. 실제 검사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입니다.
당시 공소장 변경 절차 위반으로, 즉 갈등을 빚던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혐의를 추가해서 법원에 넘긴 것으로 인정돼 윤 전 팀장이 받은 징계는 정직 1개월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로 2년간 직접 수사를 할 수 없는 고검 검사로 유배돼 있으니 그에 대한 징계는 계속되고 있는 셈입니다. 고검 검사는 지검에서 수사를 해서 결론을 내린 사건에 이의가 제기될 경우 수사자료를 검토하고 재기수사 명령을 내리는 업무 등을 주로 합니다. 검찰에서는 한직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조만간 있을 검찰 인사에서 그는 또 고검검사로 남아 있게 될까요, 아니면 3차장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최소한 수사를 할 수 있는 일선 지검이나 지청으로 가게 될까요. 이번 검찰 인사에서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그리고 특별수사팀 부팀장으로 함께 징계를 당했던 박형철 부장검사도 현재 2년째 대전고검 검사로 좌천돼 있습니다. 뛰어난 선거법 전문가였던 박 전 부팀장의 인사 결과도 함께 지켜봐야겠습니다.
이진희기자 river@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