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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인류학] 전쟁, 여성, 그리고 히스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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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인류학] 전쟁, 여성, 그리고 히스테리아

입력
2016.01.04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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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ㆍ신경인류학자

1895년, 요제프 브로이어와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환자들의 증례를 모아 <히스테리아 연구>라는 한 권의 책을 낸다. 5년 후에 출판된 <꿈의 해석>과 더불어 프로이트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업적의 가치는 단지 정신의학적 성취로 한정할 수 없는데, 프로이트주의는 이후 20세기 인류 지성사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유럽 사회에서 오랫동안 억압되었던 왜곡된 ‘여성성’에 대한 인식은 극적인 ‘전환’을 겪게 된다. 히포크라테스가 이름 붙인 것으로 알려진 ‘히스테리아’라는 진단명은 원래 그리스어로 ‘자궁’을 의미한다.

‘착어증, 교차성 사시, 심한 시력장애, 사지와 목의 다양한 마비가 나타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거의 모든 단어를 잊어버렸다. 2주 안에 거의 바보가 되었고, 사람이 앞에 있어도 보지 못했다.’

<히스테리아 연구>에 제시된 ‘안나 O. 양’에 대한 증례 내용의 일부이다. 히스테리아, 즉 ‘전환장애’는 이처럼 갑작스러운 사지의 마비나 운동장애, 가성 경련, 시력 장애, 해리나 의식 상실 등의 증상을 보인다. 그녀를 치료하던 브로이어는 자신의 아기를 가졌다는 환자의 말에 놀라 치료를 갑자기 중단하고 도망갔는데, 이처럼 상상임신이나 성적인 환상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너무나도 특이하고 극적인 증상이 나타나므로, 이를 한번 보면 쉽게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대부분 ‘젊은 여성’들이 희생자라는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히스테리아를 앓는 많은 여성들에게 강제로 자궁적출술이 시행되고는 했다. 병든 자궁으로 인해 정신병이 생긴다고 믿은 것이었다. 중세 암흑기에는 상당수의 환자들이 마녀로 몰려, 고문을 받고 죽기도 했다. 종교재판에서 마녀로 몰려 희생된 여성은 유럽 전역에서 수십 만명에 달한다. 프랑스의 한 마녀재판관은 한 해에만 600명의 ‘마녀’를 처형하기도 했다. 히스테리아 환자 중에는 매력적인 여성이 많았는데(주로 젊은 여성들이니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한 점 때문에 억울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타고난 성적 매력 때문에 아버지 등 가족으로부터 근친상간을 쉽게 당한다는 주장, 심지어는 이들이 남성을 유혹하는 본능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물론 말도 안되는 이론이다. 하지만 당시 권위있는 교회의 사제나 병원의 정신과 의사들은 이런 주장에 근거하여 부당하게 판결, 진단하고는 했다.

이러한 기존 주장들은 프로이트의 제자인 아드라함 가드너에 의해서 뒤집어졌다. 제2차 대전에 군의관으로 참전했던 그는 히스테리아 증상을 보이는 ‘남성’ 군인들을 많이 발견했다.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군인들이 죽음의 공포에 직면하자 온 몸이 마비되거나 헛소리를 하고, 경련과 실신을 일으키는 등의 전환 증상을 보인 것이다. 이후 이름부터 다분한 성적 편견을 담고 있는 ‘히스테리아’라는 진단명은 사라지고, 전환장애나 신체화장애, 해리장애 등으로 세분화되었다. 즉 소위 히스테리아는 여성들만 겪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나 강간과 같은 극단적인 트라우마 상황을 겪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다.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면서 부족간의 전투가 보다 치열해졌다. 전쟁에서 패배한 부족의 남성은 거의 떼죽임을 당했다. 젊은 여성이나 어린 아이들은 전리품으로 취급되었는데, 이들은 운이 좋으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스테판 브라카 등에 의하면 이들이 정복자로부터 삶을 구걸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바로 가성 신경학적 증상, 즉 전환 증상을 보이는 것뿐이었다.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났고, 승패가 갈리면 어김없이 집단적인 학살과 강간이 일어났다. 자신을 지켜줄 아버지와 남편이 바로 눈 앞에서 죽어갈 때 여성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 자기 자신과 어린 아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본래의 자신으로부터 스스로 해리되어 철저하게 무력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즉 전환과 해리 증상은 분명 부적응이지만, 특수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적응일 수 있다. 이러한 심리적 반응과 행동 양상은 기나긴 진화사를 통해 유전자에 각인되었고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다.

남성도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으면 전환과 해리 증상을 경험한다. 그러나 남성 ‘히스테리아’에 비해서 여성 ‘히스테리아’의 비율이 월등하게 높다. 우리 조상들은 다른 부족, 다른 국가와 늘 전쟁을 치러야 했지만, 여성은 이에 더해서 남성 위주의 사회 전체와도 항상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상 늘 패배했다. 긴 세월 동안, 여성의 사회적 위치는 전쟁 포로의 위치와 별로 다를 바 없었다.

다행히도 최근 수십년 사이에 전환장애의 유병률이 급격하게 낮아지고 있다. 한국, 일본이나 서구의 여러 국가에서는 전형적인 전환장애를 거의 찾아 보기 어렵다. 그 많던 ‘히스테리아’는 다 어디로 갔을까? 이에 대한 다양한 가설이 있지만 아직 정설은 없다. 일부 학자들은 오랫동안 큰 전쟁이 사라지고 여권이 신장된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구 어디선가는 바로 지금도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억압적인 남성 중심의 문화는 여전히 많은 곳에서 강력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한 제한된 연구에 의하면 분쟁이 잦은 일부 중동 지역의 전환장애 유병률은 무려 수십 배나 높았다. 전쟁과 억압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정신분석이 아니라 평화롭고 평등한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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