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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어린 왕자, 진짜가 따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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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어린 왕자, 진짜가 따로 있을까

입력
2016.01.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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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사막에 표류한 ‘나’에게 어린 왕자가 접근한다. 그의 첫 마디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①“저기… 나 양 한 마리만 그려줘.” ②“저… 양 한 마리만 그려줘!” ③“미안하지만… 내게 양 한 마리만 그려주세요.”

다 똑 같은 말 아니냐고 묻는다면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 그러나 생택쥐페리 ‘어린왕자’의 독자라면 저 중 한두 문장은, 어쩌면 세 문장 모두 불만스러울 것이다. 설령 불어를 전혀 모르더라도.

번역의 세계에서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은 “원칙은 없다”는 것이다. 창작에 원칙이 없듯이 번역도 문법의 오류 외엔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확률에 가깝다. 누군가는 귤보다 밀감이란 단어에서 더 진한 과즙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그 반대다. 한국어 사용자들이 어떤 단어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일일이 파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고, 역자는 자신이 보유한 한국어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이 공유할 거라 믿는 감정을 함께 공유하며 신중하게 단어를 찾아 나서야 한다. 어학 실력만큼 중요한 것이 역자의 언어적 사회성인 것이다.

최근 번역가 이정서씨가 펴낸 ‘어린 왕자’(새움)의 홍보 방식은 이런 면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지난해 알베르 카뮈 ‘이방인’ 번역본을 내며 기존의 번역들을 오역이라고 주장해 말거리를 양산했던 이씨는 이번에도 책 표지에 ‘우리가 만난 어린 왕자는 진짜 ‘어린 왕자’였을까?’란 문구를 박아 넣으며 기존 번역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어린 왕자와 꽃이 처음 만났을 때 주고 받는 “안녕”은 “좋은 아침”으로 바뀌어야 한다. 시간 정보를 가린다는 이유다. 존대의 여부도 문제 삼는다. 어떤 판에서 어린 왕자는 계속 반말을 하고, 다른 판에선 어른에겐 존대를, 꽃에겐 반말을 한다. 이씨는 정작 원문에선 꽃에게 ‘vous’(당신)를 전철수에겐 ‘tu’(너)를 쓴다며 “(역자가) 어른의 시각으로 작품을 보고 해석”한 나머지 “보잘것없는 꽃에게 존대를 할 리는 없고 어른에게는 존대를 했을 거라고 지레짐작”한 것이라고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이씨는 어른에게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번역했다). ‘vous’와 ‘tu’가 한국어의 존대 개념보다 공적ㆍ사적 관계를 구분하는 기능이 좀 더 크다는 사실을 이씨가 모를 리가 없는데도 어떻게 이런 ‘지레짐작’이 가능한 것일까.

역자가 갖춰야 할 언어적 사회성은 독자를 성의 있게 응시함으로써 가능하다. “좋은 아침”은 누군가에겐 명확한 시간 정보를 담은 인사말이지만, 다른 이에겐 국내에 영어가 한창 유입된 80년대에 급조된 ‘담백치 못한’ 인사말로 느껴질 수 있다. 꽃에게 반말을 하고 전철수에게 존대를 하는 것은 ‘어른의 시각’이 아닌 ‘한국의 시각’이다. 한국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읽히려는 역자의 노력과 마찬가지로, 시종 반말을 함으로써 어린 왕자에게서 외지인의 냄새를 풍기게 하려는 다른 역자의 의도 또한 존중 받아야 한다.

이 밖에도 한 번 “물론이야”로 번역했으면 계속 “물론이야”로 번역해야 한다든지, 접속사와 부연 설명들을 원문에 없다는 이유로 “오역”이라고 공격하는 이씨의 주장은 그의 눈이 독자가 아닌 기존 역자들을 향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게 만든다. ‘이방인’ 논란 당시 노이즈 마케팅이란 비판에 펄쩍 뛰었던 그는 다시 “진짜 어린 왕자”라는 자극적 표현으로 분란을 조장하고 있다.

앞서 든 세 개의 문장 중 1번은 김화영 교수, 2번은 황현산 교수, 3번은 이정서씨의 번역이다. 무엇이 당신의 어린 왕자인가.

생택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1960년 안응렬 교수가 처음 번역한 이후 100 종 이상의 번역본이 출간됐다. 왼쪽부터 김화영 역(문학동네), 황현산 역(열린책들), 이정서 역(새움).
생택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1960년 안응렬 교수가 처음 번역한 이후 100 종 이상의 번역본이 출간됐다. 왼쪽부터 김화영 역(문학동네), 황현산 역(열린책들), 이정서 역(새움).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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