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이 나라의 물가 목표는 둘이다.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 2%와 정부의 경상성장률 4.5%가 그것이다. 관리대상인 물가지표는 소비자물가(한은)와 국내총생산(GDP)디플레이터(정부)로 다르지만 서로 무관하지 않다. GDP디플레이터는 소비자물가뿐 아니라 생산자물가, 수출입물가의 변동분까지 반영하는 포괄적 물가지수다.
‘물가’라고 하면 자연스레 한은이 관리하는 소비자물가를 떠올리던 입장에선 GDP디플레이터라는 생소한 물가목표가 새로 생긴 형국이다. ‘물가 당국’과 한은을 동일시하던 통념도 실질성장률(우리가 흔히 아는 성장률)에 GDP디플레이터를 합한 경상성장률을 관리하겠다는 정부의 선언으로 깨졌다. 정부나 한은이나 자신들이 관리하는 물가지수가 체감 물가에 가깝다는 입장이지만, 갑작스레 상이한 물가지표-그 중 하나는 어떻게 산출되는 것인지 가늠하기도 쉽지 않은-를 동시에 접하게 된 국민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지난달 경상성장률 관리 방침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한은과 사전 협의를 전혀 거치지 않았다는 점은 앞서 드러난 바 있다.(본보 12월21일자 10면) 정부는 “물가관리는 통화정책 아닌 재정정책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지만, 발표 이틀 전까지 물가안정목표 설정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면서도 또 다른 물가목표 제시 계획을 철저히 숨긴 정부 태도에 한은은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다. “한은과의 협의 과정에서 (물가를 관리대상으로 삼겠다는)취지는 충분히 전달됐을 것”이라는 정부 관계자의 ‘해명’은 한은맨들의 부아를 더욱 돋울 성싶다. 자신들은 물가가 2% 목표에 6개월 연속 못 미치면 총재가 직접 대국민 설명에 나서라는 정부 요구까지 어렵사리 받아들였는데.
게다가 한은 입장에서 ‘경상성장률 관리’는 물가안정목표제의 대안으로 부적합하다고 이미 결론 내린 사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통화정책을 통해 물가뿐 아니라 성장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명목GDP(경상성장률)목표제 도입 논의가 활발해지자 한은도 2012년 내부적으로 새로운 물가관리지표 도입을 검토했다는 것이 한은 관계자의 설명이다. 논의 결과 단기적 경기변동에 대한 신축적 대응 등 장점은 있지만 중앙은행이 과도하게 성장을 고려한다는 인식에 따른 신뢰성 훼손이나 기대인플레이션 불안에 따른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 그런 상황을 뻔히 알고 있을 정부가 상의도 없이 경상성장률 카드를 뽑아 들었으니 한은은 그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한은 안팎에서는 정부가 경상성장률 목표 달성을 앞세워 통화정책에 간섭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1%대 초반에 머물며 2% 목표를 크게 하회하고 있는 소비자물가, 저유가 효과 소멸에 따른 교역조건 악화로 정부 목표치(1.4%)를 밑돌 가능성이 적지 않은 GDP디플레이터를 끌어올리기 위해 기준금리 인하 등 통화완화정책을 구사하라는 압력을 한은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려가 현실화할 경우 “물가안정목표 2%는 한은이 중기적으로 지향하는 목표수준이지 단기에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다”(이주열 총재)라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한은과 마찰이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는 “한은은 통화정책, 정부는 물가정책을 통해 각자 정한 목표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가 관리하는 경상성장률에 한은 소관인 소비자물가가 포괄돼 있어 애초 각자도생이 불가능한 구조인 것도 사실이라, 재작년 하반기 이래 한은 기준금리를 사상 처음 1%대로 낮추는 과정에서 불거졌던 양 기관의 갈등이 재연될 개연성은 충분하다. 한은이나 정부나 지금의 저물가 추세가 경제활력을 좀먹는 디플레이션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우려해서 공격적인 물가 관리에 나선 것인데 충분한 조율을 통해 발맞춰 출발하는 편이 더 좋을 뻔했다. 이훈성 경제부 기자 hs0213@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