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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빼앗긴 땅, 재재심 끝 권리 되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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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빼앗긴 땅, 재재심 끝 권리 되찾다

입력
2016.01.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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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구로동 농민 소유권 인정

판자촌서 쫓겨난 지 55년 만

토지 돌려받을지는 불투명하지만

1200억대 손배 확정 땐 최대 규모

서울고등법원.
서울고등법원.

박정희 정권 시절 서울 구로수출산업단지 조성으로 농지를 정부에 빼앗기고 옥살이까지 한 농민과 유족들이 재심에 재심을 거듭한 끝에 대법원에서 토지 소유권을 인정받았다. 1961년 구로동 일대 판자촌에서 쫓겨난 지 55년 만이다. 대법원이 원고만 다른 ‘구로공단 토지강탈 사건’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원심대로 인정하면 단일 소송으로는 역대 최대인 1,200억원대 국가배상이 이뤄진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옛 구로동 농지 주인들의 유족인 채모(71)씨 등 1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소송의 재재심에서, 재심의 국가 승소 판결을 취소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일 밝혔다.

이번 사건은 일제 식민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는 1942~43년 구로동 일대 토지 99만여㎡(30만평)를 군용지로 쓰겠다며 강제수용 했다. 하지만 등기부상 지목은 전답으로 남았고, 실제로 농민들에 의해 농경지로 이용됐다. 1950년 3월 농지개혁법이 개정ㆍ공포되면서 국가로부터 이 땅을 농지로 배분받은 이들은 1952년까지 상환곡(償還穀)을 납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나면서 상황은 다시 돌변했다.

국방부가 1953년 이 땅을 육군이 관리하는 국유지라고 주장했고, 1961년에는 정부가 구로공단 조성을 명목으로 소유권을 국방부에서 재무부(현 기획재정부)로 이관한 것이다. 당시 이 땅에 살던 농민들은 판잣집을 철거당한 채 쫓겨나야 했다. 이에 김모씨 등 7명은 “애초 분배 받은 농지를 돌려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966년 9월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백모씨 등 다른 주민들이 낸 9건의 소송에서도 대법원은 1968년 잇따라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공권력의 횡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정부는 패소한 나흘 뒤부터 검찰을 동원해 “농민들이 농지분배 서류 등을 위조했다”며 대대적인 소송사기 수사에 착수했다. 결국 2년에 걸친 수사 끝에 백씨 등 민사소송을 낸 주민을 포함해 143명이 체포ㆍ구속됐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소송이나 권리를 포기한 농민을 제외한 41명을 기소해 26명에 대해서는 형사 유죄 판결을 이끌어 냈다. 정부는 이후 형사판결을 근거로 민사재판 재심을 청구해 1984년 농민들로부터 다시 문제의 땅을 빼앗아갔다.

그러나 24년 뒤인 2008년 다시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을 국가가 행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당하게 공권력을 남용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과거사위는 “농민들을 집단적으로 불법 연행해 가혹행위를 가하고 위법하게 권리포기와 위증을 강요한 것은 형사소송법상의 재심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형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던 농민 26명 가운데 23명이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됐다. 이후 이들은 정부가 재심을 통해 빼앗아간 토지를 되돌려달라는 재재심을 청구했다.

사법사상 전례가 없는 재재심 사건의 원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2013년 1월 국가가 승소한 이 사건 재심 결정을 취소한다며, 국가의 잘못을 인정했다. 대법원도 이 같은 원심을 확정하면서 “민사재판의 재심사유를 인정한 판단의 기초가 됐던 형사재판이 재심에서 무죄판결로 바뀐 만큼, 종전 재심청구는 기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구로공단 조성 명목으로 농민들의 땅을 불법 수용한 것을 처음 인정한 1966년 9월 대법원 확정판결의 효력이 되살아 나게 됐다. 이번 판결은 재심에 대해 다시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첫 판단이란 의미도 있다.

실제로 농민과 유족들이 문제가 된 토지의 소유권을 돌려 받을지는 불투명하다. 1996년 시행된 구 농지법이 배분농지 등기를 3년 이내에 마치도록 하고 있는데다, 정부로부터 소유권이전등기를 넘겨받은 제3자의 등기취득시효 완성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검찰은 이번 소송을 주도한 이들이 배상금의 5%를 수수료로 챙기면서 이미 토지를 매각한 사람까지 소송인단에 포함시키고, 구청 직원과 공모해 호적 등 서류를 무단 조회한 사실에 대해 수사 중이다. 경우에 따라서 2차 소송사기단 사건이 진행될 수도 있다.

다만 이들이 수용된 토지 대신 손해배상을 받을 가능성은 있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인 관련 사건의 하급심에서는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는 기각하면서, 손해배상 청구는 인정했다. 서울고법은 지난해 2월 백모씨 등 291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관련 소송에서 “지연이자를 포함해 1,137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에서 원심이 확정될 경우 배상액은 지연이자를 포함해 1,200억여원으로 늘어나 단일 소송 배상액 규모로는 역대 최대가 된다.

김청환기자 ch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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