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론화된 지 18년 만에 법제화를 눈 앞에 둔 ‘연명의료법’이 지난달 30일 생각지도 못한 변수로 국회 법사위에서 발목이 잡혔다. 이 법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인공호흡기 제거ㆍ항암제 투여 중단 등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결정 주체는 의사다. 하지만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연명의료 담당 의사에 한의사도 포함시켜야 한다며 문제를 제기해 법안 통과가 보류됐다. 이는 지난달 초 이 법안이 국회 상임위에서 논의될 때부터 대한한의사협회가 주장해온 내용이다.
한의학계의 발목잡기로 어렵게 만들어진 입법 기회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비판이 나오자 한의협은 3일 “연명의료법의 취지에 적극 공감하다”는 입장문을 냈다.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는 담당의사에 한의사를 추가해 법률안의 완결성을 높이자는 것”이 자신들의 진의(眞意)라는 것이다. 하지만 보건의료계 안팎에서는 지난 18년 간 의료계ㆍ종교계ㆍ법조계 등이 참여했던 공청회나 사회적 논의기구에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었던 한의학계 주장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무엇보다 연명의료법상 중단 가능한 연명의료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로 의사들만 할 수 있는 시술들이다.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복지부도 연명의료 중단은 서양의학에 근거를 두고 있고,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에는 중환자실도 없어 연명의료 중단은 한의사들이 다룰 영역이 아니라고 해석한다.
한의학계가 갑자기 딴지를 거는 이유는 뭘까. 일각에서는 한의학계가 연명의료 계획 및 중단 결정 과정에서 생기는 진료비 등의 수익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추정을 한다. 한의학계의 숙원인 현대의료기기 사용권한 획득을 위한 우회적인 압박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다행히 연명의료법은 8일 열리는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통과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한의학계의 딴죽은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지만, 인간이 좀 더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을 사회적으로 오랫동안 논의한 결과물을 두고, 계산기만 두드린 것처럼 비쳐지는 한의학계의 행보에는 눈살이 찌푸려진다.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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