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끝내 획정안 마련에 실패했다. 획정위원회는 2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제시한 선거구 획정 기준에 따른 구체적 획정방안을 논의했으나 8시간 넘는 논의에도 불구하고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다음 회의 일정조차 잡지 못했다. 이로써 정 의장이 제시한 시한인 5일까지 획정위가 국회에 획정안을 제시할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고, 새 선거구 획정표를 포함한 선거법 개정안을 직권상정하겠다는 정 의장의 구상도 무산됐다. 헌정사상 초유의 ‘선거구 부재(不在)’ 사태의 장기화도 피하기 어려워졌다.
획정위의 합의 불발은 예상했던 대로다. 획정위는 이미 법정 시한인 지난해 10월13일까지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못해 선거법 규정을 위반했다. 중앙선관위가 지명하는 1명과 여야가 절반씩 추천해 의결하게 마련인 8명 등 9명으로 이뤄진 획정위의 법정 의결 정족수가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이다. 여야의 이해가 크게 엇갈리는 선거구 획정을, 동수인 여야의 ‘정치 대리인’에 맡긴 순간 예정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획정위원들의 독립적 의사결정에 실낱 같은 기대를 걸었지만 ‘역시나’였다.
물론 획정위가 비난의 직접적 표적일 수는 없다. 설사 획정위가 정 의장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획정안을 만들고, 이를 정 의장이 직권으로 상정하더라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부터 극히 희박했다. 여야가 일찌감치 300명인 국회의원 정수를 그대로 두되, 현재 246명인 지역구 의원을 253명으로 늘리고 비례대표를 7명 줄이기로 물밑 합의를 이루고도 비례대표 배분 방식의 이견을 조금도 좁히지 못해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고 온 마당이다. 지역구 246석ㆍ비례대표 54석의 현행 틀을 그대로 두되, 농어촌 지역구 감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일부 시ㆍ군ㆍ구 분할을 허용하자는 정 의장의 구상이라면 여야 모두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컸다.
이번 임시국회 폐회(8일) 이후로도 장기화할 게 분명한 선거구 부재 사태의 책임은 결국 여야 지도부에 있다. 각각의 공천 기준을 둘러싼 내부 줄다리기에는 바쁘면서도 그보다 훨씬 앞서 해결해야 할 선거구 획정에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여야 지도부의 무능과 지도력 부재에 국민적 비난이 쏠리게 마련이다.
여야 각각 내부의 정치적 이해 상충을 맞고 있고, 야당은 실질적 분당 상황으로 번질 정도의 심각한 내분을 겪고 있는 현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내부 상황의 혼란은 지도부의 결단을 재촉할 뿐 결단을 미룰 핑계는 될 수 없다. 이러고서 어떻게 정치지도자로 남겠다는 것인지, 국민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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