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서울 출생
서울예대 극작과
“정말요? 정말요!”
올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자 이진원(43)씨는 대부분의 당선자가 그렇듯, 떨리는 목소리로 재차 당선을 확인했다. 한 심사위원이 “얼마나 좋을까”라며 얼굴도 보지 못한 당선자에게 흐뭇한 아빠 미소를 보내고 얼마 후, 편집국으로 전화를 건 이씨는 “정말 당선이냐, 보이스피싱 아니냐?”고 되물었다. “몸이 안 좋아서 낮잠 자고 있던 찰나에 전화로 당선 통보를 받았어요. 이게 꿈인가 생신가 구분이 안 갔는데, 지도교수님이 아마 보이스피싱일거라고 놀리셔서 그만….”
이씨는 어린 시절 작가가 꿈이었지만, 주변에 글을 업으로 삼은 사람은커녕 작가를 ‘돈 버는 직업’이라 생각하는 어른조차 없어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그가 2012년 서울예대에 입학해 늦깎이 극작 공부를 다시 시작한 이유는 이 무렵 발병한 갑상선저하증이 결정적이었다. “약을 먹으면 금방 좋아지지만, (병을) 판정 받기 전까지는 원인을 몰라서 그대로 앓았죠. ‘죽을 것 같은 고통’이 계속 되니까 ‘하고 싶은 건 해보고 죽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혹시나 하고 응시한 대학에 덜컥 붙고 나서 “일주일만이라도 버텨보자”는 오기로 다니기 시작한 대학을 4년간 다니며 체력도 좋아졌다. 평점 4점대, 수석과 차석을 오가는 왕언니가 된 그는 서울예대 입학 첫 해인 2012년 일간지 신춘문예에 7편을 응모해 모두 낙방했다. 심기일전해 지난해 다시 한국일보에 응모했지만 결과는 또 낙방.
8전9기만의 빛을 본 당선작 ‘손님’은 올해 봄 학기 전공수업 과제로 써낸 작품이다. ‘약국 소녀’에 대한 아이디어만 갖고 A4 3장을 써내려 간 후 이야기가 풀리지 않아 8주 내내 고민하고도 종강 날짜까지 다 쓰지 못해 담당 교수 앞에 ‘죄인처럼’ 앉아있었단다. “밀양 계신 선생님 뵙고 탄 서울행 무궁화호 기차에서 소녀가 옷을 찢는 장면이 생각나더라고요. 그 3시간 동안 나머지를 다 완성했죠. 선생님들께서 ‘어느 순간에 가면 내가 아니라 작품 속 인물이 저절로 움직인다’고 말씀하실 때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아 정말 그런 순간이 있더라고요.”
이씨는 올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과정에 진학해 더 전문적인 공부를 해볼 참이다. “극작가를 꿈꾼 게 20여 년 전 학창시절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을 보면서부터였어요. 이제 저도 누군가를 꿈꾸게 만드는 대본을 쓰고 싶어요.”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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