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의 결말이 꼭 연극만의 비전 제시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처참한 민낯을 꺼내놨다고 해서 그 작품의 의미가 다 성취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작가가 드러내고 싶은 그것이 움직이는 공연성과 언어로 정지된 문학성을 둘 다 획득하여 작품전반에서 우리에게 재발견되었느냐는 것이다. 하여 남은 다섯 작품은 김현철의 ‘아빠는 집에 없다’, 정영효의 ‘주인은 없다’, 박늠름의 ‘노스텔지아’, 강희우의 ‘로맨티스트’, 이진원의 ‘손님’이었다. ‘아빠는 집에 없다’는 진지한 고민으로 써진 작품이라는 것은 체감할 수 있었지만 감상적일 수 있다는 한계가 지적되었고, ‘주인은 없다’는 안정적이긴 하지만 차이가 선명히 살아나지 않는 반복적 패턴이 눈에 보였고, ‘노스텔지아’는 연극을 알고 정직하게 극작을 대하고 쓴 글이지만 지나치게 작은 이야기라는 단점이 있었다. 강희우의 ‘로맨티스트’는 방송국과 그것을 보는 시청자 사이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얼마간의 취재와 가상의 이야기를 적절히 배합하고 결말부분에서 다소 충격적인 전환과 파업현장의 긴박한 소리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극 구성력이 어느 정도 터득된 사람에 의해 써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원고를 덮고 난 후 ‘세상에 이런 일이’ 하는 충격 외에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계속 사유해보게 하는 문학적 울림을 주지는 못하였다.
당선작인 이진원의 ‘손님’은 연극 속에서는 존재할 것만 같은 천둥치는 어떤 약국에 보호받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어떤 소녀와 안타깝게 그녀를 찾아 보호해내려는 그녀의 엄마가 서로 쫓기듯 등장함으로써 시종일관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였다. 그리고 소녀와 엄마를 통해 드러나는 딸의 학교에서 벌어진 인간관계의 파괴라는 전사(前史)가 이를 알지만 소녀를 구할 수도 내칠 수도 없는 약사의 현재 상황으로까지 순식간에 확장됨으로써 약사가 처한 딜레마를 우리도 동시에 고민하게 하는 문학적 힘까지 느낄 수 있었다. ‘손님’은 신선한 단막의 묘미도 있는 작품이다. 이를 언급하는 이유는 극문학의 깊이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히 수행되어야하는 (인)문학적 공부가 대사나 관념으로만 장황하게 투사되는 경우와 충족되지 못한 사유의 깊이를 어디서 본 듯한 공연성에만 의존하여 해결하려는 경우 둘 다를 경계하기 위해서이다. 이제 인문학적 사유는 깊게 하되 연극의 표현은 새롭게 효과적일 때가 왔다.
김광보(연출가) 장우재(극작ㆍ연출가)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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