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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복지정치를 위한 희망가(希望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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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복지정치를 위한 희망가(希望歌)

입력
2015.12.3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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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첫날이 밝았다. 오늘만큼은 희망적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다사다난했던 2015년, 민생은 곤두박질치는데 정치는 꽉 막혔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골치를 썩이던 온갖 시름을 잊은 채 올해는 다를 거라 믿고 싶다. 잘 잊어야 살아낼 수 있다는 진리. ‘망각(oblivion)’이라는 이름의 방어기제가 있기에 우리의 삶은 또다시 이어진다. 하지만 국가의 명운이 걸린 일들에서는 ‘망각의 정치’란 망조(亡兆)의 시작이다.

한국에서 복지정치가 본격화한 것은 2010년 지방선거였다. 서울 강남권 선거구에서도 야권후보가 약진하는 등 당시 야권연대의 ‘무상급식’ 공약이 히트작으로 드러난 선거였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걸까. 성장만 외쳐대던 한나라당에서조차 복지확대에 관한 유래 없는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복지논쟁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의 정국을 거치면서 ‘복지정치의 폭발’로 번지게 된다. 여와 야가 이런 저런 복지 분야들에서 대동소이한 방식으로 ‘전 국민 복지’를 주장한 것은 존재조차 희미하던 복지확대의 정치가 이 땅에서 활성화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형국이었다.

성장주의에 억압되었던 복지욕구가 터져 나오면서 어느덧 복지부문이 정부지출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복지가 늘자 비판도 늘어만 간다. 복지가 있어야 성장도 되는 선진국으로의 진입. 그래서 잉태됐던 복지국가로의 선진화 과제는 망각한 채, 복지확대를 탓하는 소리들이 힘을 얻는 형국이다. 경기침체의 근본원인인 ‘성장전략의 실종’에 관한 무능함은 묻어둔 채, 복지확대만 나무라는 상황.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다. 성장에 대한 환상으로 복지에 관한 국가차원의 준비가 뒤처진 현실을 개선하자는 이른바 ‘비정상의 정상화’를 가로막는 일. 또다시 성장주의로 회귀하려는 망각의 정치가 시작된 것이다.

한국의 복지확대가 정말 문제일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과 비교해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10% 남짓인 지금 수준도 OECD 평균의 절반을 하회한다. 한국의 증가 속도가 다른 나라들보다 특별히 빠르다고 볼 근거도 없다. 같은 복지후발국이라도 그리스나 일본의 증가 속도에 비해서 한국의 기울기가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나타난다.

얼핏 들으면 엄청난 문제라고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복지확대 자체가 왜 문제인지 뚜렷한 근거조차 성립하지 않는다. 복지확대가 복지욕구에 부응하는 거라면 국민행복에 기여하는 것일 테고, 복지확대가 인적 자본 투자일 수도 있다고 보면 그런 복지확충의 속도는 빠를수록 좋은 일인데 말이다.

요컨대, 복지확대에서 진짜 문제는 ‘구성의 문제’이지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복지가 경제와 선순환 하도록 설계되어 있는가. 복지수준에 걸맞은 국민부담이 이루어져서 재정적으로 튼실한가. 이런 종류의 질적인 문제를 고민해야지 양적인 문제만 갖고 호들갑 떨 일이 아닌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 하에서의 복지정치가 포퓰리즘에 취약한 것도 사실이다. 성장론으로 복지확대를 견제하다가도 막상 선거 때만 되면 ‘닥치고 복지’를 외치는 현상, 선거경쟁의 패착이 재현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국민부담이 필요해 보여도 정치인들이 전면적인 증세나 전폭적인 국민부담의 증가를 주장하긴 힘들 게 뻔하다. 서비스복지로 고용을 견인하는 게 답이더라도 현금복지의 달콤함에 기대면서 당선만을 꿈꿀 것이다. 사회적경제 분야의 착한 민간은 외면한 채, 복지시장의 업자들에게 줄서기 하는 정치인들이 넘쳐날 것이다. 지하경제양성화나 세출구조조정은 나 몰라라, 지역구 예산 챙기기에만 눈이 벌게지는 장면은 여의도정치의 익숙한 풍경들이다.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선거 코앞에서 선거구조차 못 정하는 정치판의 ‘파리 목숨들’에게 또다시 나라를 맡겨야 할 것인가. 복지확대를 왜 하냐는 질문에 ‘2016년의 한국이기 때문이다’라고 일갈할 수 있는 선진국형 정치인의 등장에 희망을 품어본다. 2016년 4월 13일의 해는 서쪽에서 떴으면 좋겠다.

안상훈 서울대 교수ㆍ사회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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