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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신청에서 범죄까지... ‘매크로’ 어찌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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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신청에서 범죄까지... ‘매크로’ 어찌하오리까

입력
2015.12.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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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 키보드로 여러 번 할 동작

순서 설정해 클릭하면 자동 실행

캠핑장, 휴양림 등 예약 싹쓸이 후

돈 받고 되파는 악용사례도 늘어

적발 어렵고 제재 수단도 없어

“대부분 금전 범죄… 엄중 처벌을”

서울 유명 사립대에 재학 중인 김모(27)씨는 지난해 1학기 수강신청 전쟁의 승자가 됐다. 졸업 필수과목과 인기 있는 전공수업 등 다섯 과목 모두 ‘매크로(자동명령 프로그램)’를 이용해 단번에 수강신청 절차를 끝냈기 때문이다. 매크로는 마우스나 키보드로 여러 번 해야 할 동작들의 순서를 미리 설정하면 클릭 등 한 번의 입력만으로 일련의 명령을 자동 실행시켜주는 프로그램. 김씨는 30일 “요즘에는 아예 선배들이 대학 신입생들을 앉혀놓고 매크로 강의를 할 정도”라며 “1초를 다투는 수강신청에서 일일이 마우스 조작을 하다간 오히려 불이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수강신청 뿐만 아니라 매크로는 여러 방면에서 사용자에게 유용한 팁이다. 수년 전부터 온라인 게임에서는 단순 동작을 반복해 레벨을 올려주는 방법으로 활용돼 왔다. 이용 방법도 쉬워 간단한 인터넷 검색을 통해 무료 다운로드가 가능하고 상세한 설명까지 첨부된 블로그와 사이트가 수두룩하다.

그러나 기회 균등의 측면에서 매크로를 사용하지 않는 이들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주는 등 공정 경쟁을 해치는 역기능도 만만치 않다. 서울대와 성균관대 등 일부 대학들은 수강신청 계절이 찾아오면 아예 매크로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공지를 올리기도 한다. 게임에서도 선의의 피해자가 나온다. 유명 온라인 게임 마니아인 원모(26)씨는 외출할 때에도 집에 있는 컴퓨터를 켜 놓고 나간다. 원씨는 “매크로를 워낙 많이 써 다들 레벨이 높고 좋은 아이템을 사용하다 보니 새로운 이용자도 게임을 제대로 즐기려면 어쩔 수 없이 매크로에 의지해야 한다”고 푸념했다.

이 정도는 사소한 부작용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매크로가 범죄에 악용돼 재산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일부 온라인 게임 이용자들은 전투나 거래 등 단순 반복 작업에 매크로를 활용해 아이템을 마구잡이로 획득한 뒤 이를 현금화시켜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전문 꾼들은 아예 중국에 ‘작업장’을 차려 놓고 게임 계정을 여럿 만든 후 아이템을 현금화 하는데 과거 고용된 중국인이 하던 일을 이제는 전문 매크로가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판 허생’으로 불리는 리셀러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매크로와 유사한 수천만원짜리 ‘봇’을 돌려 선착순으로 판매하는 의류, 신발 등 사이트에 접속해 물량을 선점한 뒤 되팔아 이익을 챙긴다. 이달 18일에는 매크로를 활용해 유명 캠핑장과 휴양림 사이트의 황금시간대 예약을 싹쓸이한 다음 되팔아 수백만원을 가로챈 프로그래머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이처럼 매크로는 범죄와 편익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놓여 있지만 제재 수단은 딱히 없는 상태다. 사용자를 직접 신고하지 않는 이상 적발이 어렵고 적용 법조항도 애매한 탓이다. 이번 휴양림 사건에서도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 대신, 사업자의 영업에 장애를 초래했다는 이유로 업무방해 혐의만 적용됐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관계자는 “자신의 컴퓨터에 매크로 프로그램을 깔았을 뿐 상대방 시스템에 고의로 악성코드를 심지 않을 경우 정보통신망법에 근거해 위법행위를 찾아내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악성코드로 간주하려면 전체 시스템을 교란할 수준은 돼야 하는데 단순 반복이 특기인 매크로의 속성상 불법을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내부 시스템에서 꾸준히 점검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매크로도 진화해 일일이 관리하기가 불가능하다”며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금전적 손실의 여지가 큰 만큼 관련 법규정을 폭넓게 적용해 엄중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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