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 중 이런 게 있다. “한번 잔인해봐라/이 문이 열리거든 아무 소리도 하지 말아봐라” 제목은 ‘잔인의 초’. 순정과 비정이 한끝 차이고 다감과 매정이 동전의 양면이라 여겨질 때, 무슨 공안(公案)처럼 미간에 저 구절이 떠 있다. 어떤 억하심정이나 남에게 말 못할 분루가 속을 어지럽혀서는 아니다. 화가 나거나 진심이 통하지 않아 분통 터질 때라면 그저 퍼부어대거나 속으로 눌러버리면 될 일. 잔인은 폭발과 침잠 그 어느 쪽으로도 융통 가능한 심사가 아니다. 냉엄해지려고 부러 표정을 굳히거나, 마음의 혼돈을 다잡으려 짐짓 평온한 척 너스레 떠는 건 속 좁은 자기기만일 뿐이다. 잔인은 뭐랄까, 무심의 극한이라기보다 전념의 궁극에 가깝다. 시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암 지금도 부드럽기는 하지만 좀 다르다” 이를테면, 더 부드러워졌기에 부드러움만으론 안 되는, 때론 악의마저 느껴질 정도로 서슬 퍼런 마음의 극지가 저 구절에선 보인다. “좀 다르”면 당연히 무서워진다. 스스로에게도 상대에게도 ‘좀 다른’ 건 영원히, 많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성복은 “서정시인은 비정해야 한다”고 쓴 적 있다. 김金이든 이李든, 마음의 궁극을 들여다본 자들은 결국 잔인과 비정 안에서 부드러운 칼을 갈고 닦는다. 그렇게 스스로를 찌르고 타인을 발가벗긴다. 시는 위로의 양식이 아니다. 발가벗은 마음의 통렬한 칼날일 뿐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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