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한 집회 장소로 피켓을 들고 이동하는 것도 ‘미신고 시위’라며 주최자를 형사 처벌하려 한 수사기관에 대해 대법원이 또 제동을 걸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집회ㆍ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구모(38) 전 알바노조 위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0일 밝혔다.
구씨는 2013년 11월 알바노조 회원 100여명이 서울 합정역과 홍익대 ‘걷고 싶은 거리’, 신촌역 인근 등 3곳에서 오후 7~10시까지 집회를 하겠다고 신고했다. 집회 장소를 이동하면서 피케팅이나 구호제창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집회 당일, 집회 참가자들은 이동 중에 마포경찰서 경비계장으로부터 “플래카드 및 피켓을 갖고 신고되지 않은 행진을 하고 있다”며 갑자기 해산명령을 들었다. 경비계장은 이어 “플래카드와 피켓을 제거하라”고 했다. 집회에서 의사표현을 하려고 만든 피켓 등을 들고 이동한다는 이유만으로 제재를 한 것이다. 경비계장은 또 “삼삼오오 이동하라”고 경고했다. 경찰은 ‘미신고 행진’임을 강조해 해산명령을 다섯 차례나 했다.
참가자들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신고한 집회 장소가 3곳이고, 그리로 피켓과 플래카드를 들고 가겠다는 걸 ‘시위’로 보고 당시 ‘집시법 10조’(옥외시위 금지 시간)을 들어 해산명령을 했던 것이다. 집시법 10조는 해뜨기 전이나 해가 진 뒤에는 시위를 해선 안 된다는 규정인데, 그때는 일몰~밤 12시 전 야간시위 금지는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지난해 3월)이 나오기 전이었다. 구씨도 당시 야간행진도 신고하려 했으나 금지 규정 때문에 못 했었다. 경찰은 일부 참가자들이 ‘내 시급 누가 먹었나’, ‘알바도 노동자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는 구호를 외쳤다는 걸 보태 구씨가 주최자 준수사항을 어겼다고 봤다.
1심 법원은 “각 집회 장소로 이동하는 사정은 이미 예정돼 있었고,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가는 게 불가피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통행이 잦은 거리에 경비계장 말대로 삼삼오오 이동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참가자들이 주로 인도로 다녀 교통방해가 명백했던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설사, 집회 장소간 일부 구호제창이나 피케팅이 있었다고 해도 집회 주최자의 준수사항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불복해 항소했다. 참가자들의 이동이 야간시위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행진 방향 맞은 편 차량들이 충돌을 우려해 급히 속도를 줄이거나 차선을 바꾸는 등 교통방해가 발생될 수 있어서 해산명령은 적법했는데 참가자들이 불응해 집시법을 어겼다는 것이다. 이에 2심은 “당시 구씨는 구호를 선창하지도, 피켓을 들지도 않고 참가자들과 함께 이동만 했다”며 “당초 신고한 장소 등의 범위를 뚜렷이 벗어나 야간 시위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경찰의 ‘해산명령’을 할 수 있는 때에 대해 강조하며 2012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인용했다. ‘미신고 시위를 해산명령의 대상으로 하면서 별다른 해산요건을 정하고 있지 않더라도, 타인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에 한해 집시법을 들어 해산을 명할 수 있다.’
재판부는 “구씨 등 참가자들이 이동 중 폭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고, 경찰이 찍은 사진을 보니 교통 소통에 큰 혼란을 초래한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며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히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려워 계장의 해산명령이 부적법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도 1ㆍ2심 판단을 그대로 인정해 검찰의 상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했다. 2심이 인용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는 경찰 경비과 직원들이 새겨둬야 할 문장들이 더 있다. 아래와 같다.
‘집회의 자유가 가지는 헌법적 가치와 기능, 집회에 대한 허가 금지를 선언한 헌법 정신, 사전신고제를 둔 취지를 보면, (집회) 신고는 경찰에 집회 정보를 제공해 공공질서의 유지에 협력하도록 하는 데에 의의가 있는 것이지 허가를 구하는 신청으로 변질되어선 안 된다. 신고를 안 했다는 이유만으로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헌법의 보호 범위를 벗어나 개최가 허용되지 않는 집회 내지 시위라고 단정할 순 없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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