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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금동 달동네서 여인숙골목까지... 징한 공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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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금동 달동네서 여인숙골목까지... 징한 공간들

입력
2015.12.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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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하고 고단한 삶의 미로가 실핏줄처럼 남아있는 목포 서산동의 골목길.
지난하고 고단한 삶의 미로가 실핏줄처럼 남아있는 목포 서산동의 골목길.

빛 바랜 흑백사진 앨범을 펼쳐놓은 듯 한 걸음 한 걸음 시간을 되새김질 하는 여행이다. 달동네를 찾고 허름한 골목을 헤집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다. 부서진 담벼락과 지붕, 좁고 지저분한 골목 등 불편한 풍경임에도 왠지 그 속에 서면 가슴이 아련해지고 뭉클한 위로를 받는다고. 항구의 비린내와 복잡다단한 삶의 향기가 뒤엉킨 도시 목포에도 그 골목길이 많이 남아있다.

시장을 잇고 항구를 잇고 열차역을 잇고 있는 삶의 공간이다. 지난하고 고단한 삶의 미로가 여전히 남아 그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이곳에만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공간, 도시의 실핏줄 같은 골목이 남아 목포의 역사를 붙들고 있다.

골목길을 거닐 때는 절대 거만을 떨어선 안 된다. 객은 향수를 느끼겠다고 찾지만 주민들에게 그 골목은 엄중한 삶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고단함으로 끈적끈적한 공간이다.

온금동과 서산동의 산비탈 마을

목포의 달동네 중에서 최근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곳은 온금동. 토박이말로 따뜻한 만이란 뜻의 ‘다순구미’란 옛 이름이 붙어있는 마을이다. 유달산 자락이 바다로 치내리는 비탈에 자리하고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가난한 동네다. 목포가 개항하기 전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 살던 원조 목포마을이다. 뱃사람들의 마을인 만큼 동네에 전해지는 사연엔 그들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다.

온금동의 ‘조금새끼’란 말이 전해진다. 바닷물이 빠지는 조금 때면 어부들은 출어를 포기하고 집에서 쉬어야 했다. 그때가 마을의 집집마다 아기를 갖는 시간. 그래서 마을엔 유독 생일이 같은 아이가 많아 이들을 조금새끼라 불렀다고 한다. 이 아이들이 자라 함께 배를 타고 나갔다가 모진 풍랑에 한꺼번에 생을 마감하는 일도 잦았다고. 마을엔 생일 뿐 아니라 제삿날도 같은 집이 수두룩했단다. 대를 잇는 가난의 사슬을 끊으려 죄다 떠나서인지 마을엔 노인들만 남아 골목을 지키고 있다.

목포 서산동의 할머니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목포 서산동의 할머니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온금동과 이어진 이웃 달동네가 서산동이다. 이곳의 골목 풍경도 온금동과 다르지 않다. 양지바른 터에 할머니 몇 분이 나와 옛이야기를 나눌 뿐, 좁은 골목엔 싸한 기운이 감돈다.

서산동의 골목을 타고 내려오면 예전의 ‘사쿠라마치’를 만난다. 지금은 금화동으로 이름이 바뀐 곳으로 일제때 유곽거리였다. 현해루 삼교루 명월루 등 요정들이 여럿 모여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때 지어진 일본식 가옥들이 외형이 변형된 채 일부 남아있다.

서산동 골목 곳곳에 걸려있는 시화.
서산동 골목 곳곳에 걸려있는 시화.
일제시대 요정이 몰려있었던 거리.
일제시대 요정이 몰려있었던 거리.

항동시장과 만호동 언덕

목포역 주변에 중앙시장이나 구청호시장이 있었듯 목포항에도 항동시장과 목포수산물종합시장 등 2개의 큰 시장이 있다. 이중 항동시장은 목포와 연결된 신안 등지의 각 섬사람들을 위한 장터였다. 지금은 목포항 입구에 여객선터미널이 자리잡고 있지만 예전엔 항동시장 바로 앞에 잔교가 있었고 각 섬을 잇는 여객선들이 이곳에 사람을 내리고 짐을 부렸다.

섬사람들이 지고 온 것과 섬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모아 팔던 시장이 바로 항동시장이다. 항동시장의 가운데에 보리밥집 골목이 있다. 시장을 찾은 이들이 장을 보고 뱃시간을 기다리며 반주를 곁들여 허기를 달래던 골목이다.

목포진에서 내려다본 목포시 전경.
목포진에서 내려다본 목포시 전경.

이 짧은 골목과 이어진 계단이 있다. 전영자 목포시 문화관광해설사는 “주말이면 섬에서 목포로 공부하러 나온 학생들이 진을 쳤던 곳”이라고 했다. 섬의 부모가 바리바리 싸서 마을 사람들 통해 전해주는 찬거리 등을 받으러 나온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30~40년 전 목포의 학생 절반 이상은 인근 섬이나 시골에서 유학 온 아이들이었다”고 했다. 지금도 그 인구는 상당하다.

이 계단을 지나 꼬불꼬불 골목길을 오르면 목포진이 나온다. 조선시대에 수군의 진영이 있던 자리다. 목포진유적비가 남아있다. 2007년부터 목포시는 역사공원 조성사업을 벌였고 만호동 언덕에 객사 등을 조성했다. 목포진에서 내려다 본 전망이 아늑하다. 유달산에서 흘러내린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목포 내항의 정한 물 속으로 부드럽게 스며든다.

송도신사가 서있던 언덕

목포종합수산물시장에서도 골목과 언덕이 이어진다. 이 언덕의 꼭대기엔 일제가 세운 송도신사가 있었다. 한일병합 후 일본인들이 목포에 성대한 규모를 갖춰 지은 신사였다. 원래 소나무가 많았던 섬이었는데 일본인들이 소나무를 죄다 베어 버리고 벚나무를 심은 뒤 정상부에 송도신사를 만들어 강제 참배를 하게 했던 곳. 주변이 간척되며 섬은 땅과 이어졌다.

옛 신사 부속건물이 남아 가정집으로 사용되고 있다.
옛 신사 부속건물이 남아 가정집으로 사용되고 있다.

해방이 된 후 무주공산인 언덕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지금은 언덕 전체가 집이 다닥다닥 붙은 주택가가 됐다. 광복과 동시에 신사와 관련된 유적들은 대부분 철거됐지만 당시의 신사 부속 건물 1동이 지금까지 남아 개인 가옥으로 사용되고 있다. 언덕의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집이다. 지붕의 라인이 유난히 하늘로 솟구쳐 오른 게 일본식 지붕 선을 닮은 건물이다. 해방 후 교회로 사용되기도 했던 건물이다. 가정집으로 개조돼 지붕이나 외벽엔 함석이 덮여있다.

77계단.
77계단.

송도신사가 있던 동명동 언덕으로 올라가는 곳에는 당시의 신사계단이 남아있다. 일명 77계단이다. 이 계단의 꼭대기 인근에 신사 입구를 지키던 탑이 있었다고. 골목에서 만난 조연엽(89) 할머니는 “어느 날 탑이 쓰러졌고, 누군가 가져가 버렸는데 동네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집 지을 공간이 생겼으니 고맙기만 했다”고 말했다. 이 동네에서만 59년을 살았다는 할머니는 “자식들이 편한 데로 이사 가라고 보채지만 볕 좋고 전망 좋은 이 집에서 떠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동명동의 꼬불꼬불한 골목길.
동명동의 꼬불꼬불한 골목길.
골목길에 주민들이 가꾸고 있는 화분들.
골목길에 주민들이 가꾸고 있는 화분들.

골목길이 조금 넓어지는 공간엔 커다란 화분들이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나름의 골목 정원이다. 달동네 골목길에 생뚱맞게 드려놓은 벽화보다 저 빈 화분이 정겹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외지인이 들고 온 억지 미화가 아니라 사는 이들이 스스로 꾸며낸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목포역 주변의 여관골목

옛 이리역여인숙으로 사용되던 일식 가옥.
옛 이리역여인숙으로 사용되던 일식 가옥.

동명동 언덕에서 내려와 목포역과 오거리쪽으로 내려오면 여관동네를 만난다. 역 주변이면 꼭 있는 오래된 여관촌이다. 거리에선 하얀 일식가옥이 눈에 띈다. 일제 때 철도역 숙소로 사용됐던 건물인데 이후 이리여인숙으로 운영됐었다고 한다. 건물 안에는 다다미도 그대로 남아있다고. 지금은 자물쇠가 걸려있고 창문에도 커튼이 쳐있어 안이 보이지 않는다.

허름한 여인숙 골목.
허름한 여인숙 골목.
더욱 조밀해진 골목.
더욱 조밀해진 골목.
목포의 좁은 골목.
목포의 좁은 골목.
지붕 위에 또 집을 올리고 있는 건물.
지붕 위에 또 집을 올리고 있는 건물.

주변엔 제법 세련된 모텔도 있지만 요즘엔 보기 드문 정말 오래된 여인숙들도 많다. 60,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나 나올법한 옛 모습 그대로 여전히 영업을 하는 공간들이다.

여인숙 골목을 벗어나 목포역에 가까워질수록 건물과 건물 사이는 더욱 조밀해진다. 지붕 위에 건물을 올린 신기한 집들이 보이는가 하면, 골목이 더욱 좁아져 옆으로 게걸음을 해야만 지날 공간들이 이어진다. 삶이 더욱 강퍅해지고 더 치열해진 흔적들이다. 어떻게든 살아야겠고 버텨야겠기에 만들어진, 징하디 징한 삶의 공간들이다. 그 허름한 골목들로 한 줄기 바람이 분다. 머문 시대 위로 또 다른 시간이 쌓이고 있다.

목포=이성원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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