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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소녀상 이전 논란과 '여가부-종로구청'의 면피주의

입력
2015.12.3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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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이전 반대 노래공연과 학생 및 시민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소녀상의 무릎에 누군가 스카프를 덮어 놓았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이전 반대 노래공연과 학생 및 시민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소녀상의 무릎에 누군가 스카프를 덮어 놓았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29일 때 아닌 ‘위안부 소녀상(평화의 소녀상) 이전 반대’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전날 한일 외교장관이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 문제에 대해 “관련 단체와 협의해 적절히 해결하기로 노력한다”는 내용의 조건부 합의를 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일본 측의 우려가 있어 입장을 표명한 것일 뿐 이전을 약속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당초 피해 할머니들의 의견 한 마디 듣지 않고 협상을 마무리 지은 정부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국민 정서가 팽배해 있습니다.

정부 입장과 국민 정서가 충돌하는 뜨거운 이슈는 의외로 ‘기본’에서 그 해답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본보 기자들은 29일 철저히 법리적으로 소녀상 이전 문제에 접근해 봤습니다. 하루 종일 이어진 취재 과정에서 법률 전문가들과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은 모두 “정부가 소녀상 이전을 강제할 법적 근거는 없다”는 데 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소녀상 이전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비교적 싱겁게 끝날 것 같았던 취재는 마감 직전 걸려온 종로구청의 전화 한 통으로 다시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소녀상 철거 권한을 가진 종로구청은 애초 본보 기자에게 “소녀상은 도시미학적인 조형물로 허가 여부를 떠나 공익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강제로 철거할 수 없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왔습니다. 하지만 구청은 오후 6시가 넘어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여가부)로부터 소녀상 철거 등에 따른 요청 공문이 있을 경우 이를 검토하겠다”며 입장을 바꿨습니다. 뜬금 없이 여가부에 칼자루를 넘긴 셈입니다.

종로구청 공문에 갑자기 여가부가 등장한 배경을 이해하려면 소녀상 설치 과정을 돌아봐야 합니다.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은 엄밀히 말해 도로점용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시설물이 아니었습니다. 쉽게 말해 임의로 소녀상을 설치할 경우 불법적치물로 분류돼 철거될 소지가 있는 조형물입니다. 이 때문에 2011년 소녀상 설치 주무부처였던 여가부는 ‘국가사업과 관계되는 것은 주무부처와 도로관리청이 협의하여 설치할 수 있다’는 도로법 제5조에 근거해 종로구청에 설치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현행법을 우회했습니다. 소녀상 설치를 국가사업의 일환으로 간주해 별도의 허가가 필요 없게 만들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해결책은 아이러니하게도 종로구청이 29일 소녀상 이슈에서 ‘발을 빼는’ 근거가 됐습니다. 상반된 내용의 구청공문을 받아 든 본보는 결국 구청의 입장 번복 과정을 모두 기사에 싣기로 결정했습니다.

보도가 나가자 여가부와 종로구청 모두 전화를 걸어와 난색을 표했습니다. 여가부는 “설치와 철거는 별개의 문제인데 여가부가 기사에 언급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종로구청은 “‘여가부 요청이 있을 시 이전을 검토하겠다’는 최종입장만 기사에 실어달라”고 부탁해왔습니다. 소녀상 설치로 국민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질 때는 머리를 맞대고 묘수를 모색하던 두 기관이 국민 정서와 정부 입장이 묘하게 갈리자 눈치를 보며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양상이었습니다.

양측의 전화는 이튿날인 30일에도 이어졌습니다. 전날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양측 관계자가 직접 만나 어느 정도 합의를 이뤘다는 점입니다. 양측 관계자는 이날 종로구청에서 만남을 가진 뒤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소녀상을 철거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하지만 양측 사이에는 여전히 온도차가 존재합니다. 여가부는 “종로구청 측이 ‘여가부는 소녀상 철거와 상관없다’는 내용의 해명보도자료를 내기로 했다”며 기사에 실어달라고 요청했지만 종로구청이 보내온 자료는 이와 사뭇 달랐습니다. 해당 자료에는 이 같은 내용 대신 “소녀상 설치 주체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로, 철거나 이전에 관한 사항은 국민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짧게 명시돼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이전ㆍ철거 권한이 정확히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빠졌습니다.

물론 밤늦은 시간까지 언론 보도를 체크하는 공무원들의 노고를 모르는 바 아닙니다. 하지만 보도 이후 여가부와 종로구청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요청은 “기사에서 우리 기관의 이름과 민감한 멘트를 삭제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밤늦은 시간까지 언론보도를 체크하는 이유가 국민 여론을 읽기 위해서라기보다 난처한 일에 얽히기 싫어하는 관료사회 특유의 ‘면피주의’ 때문으로 해석되는 부분입니다. 국민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들에게 ‘보신’이 아닌 ‘보국’을 기대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먼 듯 합니다.

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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