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블로커가 뛰어 올라 상대 공격수의 스파이크를 막아냈다. 세 명 모두 환호성을 지르는데 정작 공이 누구의 손에 맞은 것인지 알기 어렵다. 대체 공을 막아낸 선수는 누구였을까, 이를 족집게 집듯이 잡아내는 이들이 바로 코비스(KOVIS) 요원들이다.
코비스 요원은 프로배구 V리그 경기 공식 기록원을 부르는 이름이다. 김안나(40) 요원을 포함한 7명의 요원들을 27일 OK저축은행-KB손해보험 경기가 열린 안산상록수체육관에서 만나 기록원들의 역할과 고충을 들여다 봤다.
한 경기에 투입되는 요원은 총 7명. 메인 2명, 보조 4명, 관리자 1명으로 구성된다. 연고지별로 총 24명의 기록원들이 돌아가면서 7개월간의 V리그 대장정을 깨알처럼 들여다본다. 이들은 정전, 인터넷 끊김, 컴퓨터 오류 등 경기장에 일어날 수 있는 돌발 상황을 2중, 3중으로 대비하고 있다. 전산 입력이 아예 불가능할 때를 대비해 최후의 수단인‘수기’를 담당하는 요원까지 두고 있다. 요원 대부분이 선수 생활을 했던 배구인 출신이고, 경기 기록을 실시간으로 불러주는 ‘콜(Call)’을 담당하는 메인 기록원은 실업팀 이상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심판 자격증까지 소지하고 있다.
요원들 중 ‘최고참’이라는 김안나씨 역시 후지필름 소속 실업팀의 공격수 출신이다. 김 요원은 “결코 쉽지 않은 직업”이라며 “특히 트리플 크라운 기록과도 연계돼 있는 블로킹을 기록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털어놨다. 배구 기록은 크게 서브 2개, 공격 6개, 블로킹 2개, 리시브, 디그, 세트 1개씩 총 13개로 분류된다. 그 안에서도 세부 영역이 나눠져 요원들은 쉴 틈이 없다. 여자 경기까지 합하면 5시간 이상 자리를 지켜야 하는 일인 만큼 고도의 끈기와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2005년 프로배구 출범과 함께 코비스가 결성되면서 요원들도 베테랑이 됐지만, 기록의 세계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김 요원은 “인터넷 생중계와 문자 중계까지 꼼꼼히 보는 배구팬들이 생기면서, 1차 정보를 인터넷으로 내보내는 요원들의 부담감도 커졌다”고 설명했다. 기록과 중계 방송을 대조해보고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의 기록이 틀렸다고 항의를 하는 팬들도 있다는 것이 김 요원의 설명이다.
또 외국인 선수가 바뀌고, 국제 대회 참가가 늘어나면서 배구 흐름과 유행도 변한다. 이에 따라 해마다 기록 기준도 조금씩 손봐야 한다. 김 요원은 “OK저축은행의 시몬이 오면서 용병들의 플레이도 많이 달라졌다. 보통 용병들이 ‘나쁜 볼’ 전담반이었다면 시몬 이후 속공을 쓰는 외인들이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요원들은 배구의 흐름뿐만 아니라 관중들이 보지 않는 부분을 볼 때가 많다. 김 요원은 OK저축은행 세터 이민규(23)를 좋아하는데, 이 역시 김 요원만의 특이한 시선 때문이다. 김 요원은 “관중들은 공격수들의 화려한 득점 세리머니에 열광하지만, 이민규는 늘 세리머니를 작게 하는 편이다. 그 다음을 생각하기 위해서 항상 준비 자세를 취한다”고 칭찬했다.
김 요원은 마지막으로 ‘코비스 요원을 정의해 달라’라는 질문에 “그림자”라고 답했다.
그는 “요원들은 코트에서는 크게 눈에 띄지 않지만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있어야만 하는 존재들”이라며 “또 배구를 정말 사랑하고, 배구 발전을 응원하는 사람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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