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여성 아워트프 마주크는 지난 12일 생애 처음으로 투표를 했다. 수도 리야드의 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처음으로 투표를 한 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울고 말았다, 이건 우리가 오직 TV에서만 봤던 다른 나라에서나 일어나는 그 무엇이었다”며 울먹였다.
교사인 무함마드 알 샤마리는 그의 딸의 투표를 독려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이 장애물을 부수고 싶다, 내 딸이 자신의 자리를 갖고 남성들과 섞일 일이 없다면, 무엇이 내 딸이 투표하는걸 막을 수 있겠는가? 샤리아 율법에 위배되지 않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지지한다”고 힘 줘 말했다.
사우디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참여한 지방 선거가 전세계적 관심 속에 치러졌다. 20명의 여성 당선인을 배출한 사우디의 이번 선거가 보수적인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의 사회개혁을 위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선거는 사우디 여성 참정권 운동의 중요한 승리였다. 그 시작은 2011년 아랍의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동을 휩쓴 아랍의 봄의 영향을 받아 사우디에서도 정치개혁과 사회개혁을 주장하는 시위가 산발적으로 벌어졌다. 여성들은 페이스북에서 ‘발라디’라고 불리는 여성 참정권 운동을 전개했다. 사우디 정부는 2005년 처음으로 남성들만 투표하고 입후보할 수 있는 지방 선거 제도를 도입했으며 2011년 치뤄진 두 번째 지방 선거에서도 여성은 유권자로도, 후보자로도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성들은 이 지방 선거를 겨냥했다. 4월에는 제다와 리야드, 담맘에서는 행정관들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2011년 지방선거 참여를 위한 유권자 등록을 하기도 했다. 사우디 여성 억압의 가장 큰 상징 중 하나인 ‘여성 운전 금지’에 도전하기 위해 6월에는 여성 활동가들의 대규모 시위도 벌어졌다.
아랍의 봄이 불러온 민주화 불길이 사우디로 확산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전 사우디 국왕이 내건 카드가 바로 여성들의 권리 신장이었다. 여기에는 최악의 여성 인권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계산도 있었다. 여성 참정권 요구가 전국적인 시위로 확대되자 그는 2011년 지방 선거를 며칠 앞두고 2015년 선거에 여성이 참여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압둘라 국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교육과 직장에서 여성의 권리 향상을 꾀했고 2013년에는 대대적인 가정폭력 근절 캠페인을 벌였다. 2013년 3월에는 국왕의 최고 자문기구로 150명으로 이뤄진 슈라위원회에 이 중 30명을 여성으로 임명했다. 슈라위원회는 법안을 검토하고 건의하는 권한을 갖는다.
“악마에게 문 여는 행위”반대 목소리도
그러나 사우디의 여성 권리 개선정책은 보수적인 이슬람 성직자들의 큰 반발을 샀다. 사우디의 최고 종교지도자인 그랜드 무프티는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악마에게 문을 여는”행위라며 반대했다. 진짜 권력은 왕실 가족과 종교지도자와 남성 장관들에게 있는 것이라며 선거를 겉치레일 뿐이라며 보이콧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우디 여성의 첫 선거 참여도 순탄치 않았다. 보수적 이슬람 성직자들의 반발뿐만 아니라 정부의 제재도 만만치 않았다.
선거 몇 개월 전 사우디 당국은 여성 의원 후보자들의 전문성 개발을 돕는 발라디 이니셔티브의 프로그램들을 중단시켰다. 교육이 무료로 이뤄짐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부당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우려를 내세웠다.
여성 운전을 금지한 사우디의 악습도 후보자들의 발목을 잡았다. 사우디는 여성의 운전을 금지하는 명문적 규정이 없어 관습적으로 여성에게 운전면허를 발급하지 않는 방법으로 여성 운전을 금지하고 있다. 때문에 여성이 운전하는 경우 경찰은 무면허 운전 혐의로 입건해 처벌하고 있다.
인권 활동가로 의원 후보로 입후보한 로우자인 알하틀로울은 지난해 운전을 했다는 이유로 후보 자격을 박탈당했다. 알하틀로울은 지난해 12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사우디로 차량을 몰고 들어가려다 국경검문소 수비대에 저지당했다. 그녀는 UAE에서 발급된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사우디를 횡단해 여성 운전을 금하는 사우디 당국의 부당성을 알리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테러 혐의를 받는 피고인을 재판하는 법정에 기소됐으며 두 달 이상 구금되기도 했다. 인권활동가로 카티프의 걸프 해안도시의 의원 후보로 입후보한 나시마 알사다흐 역시 사우디 당국으로부터 명확한 이유 없이 후보 자격 박탈을 통보 받기도 했다.
선거운동도 쉽지 않았다. 여성 후보자들은 남성들에게 직접 선거유세를 하는 것도 금지됐다. 남성들에게 유세를 하기 위해서는 남성 대변인을 통해서만 가능하거나 파티션을 치고 모습을 가려야 했다. 심지어 광고판과 TV에서도 얼굴을 드러내고 유세를 할 수 없다.
이에 굴하지 않고 여성 후보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창조적인 선거 유세 활동을 펼쳤다. 여기서도 얼굴을 직접 드러낼 수 없지만, 이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각종 SNS를 활용해 유권자들에게 정책을 호소했다. 리야드에서 출마한 하이파 알 하바비도 SNS로 선거운동을 했다. 그는 “나는 이웃들에게 그들의 문제에 대해 호소했다. 그리고 비디오를 SNS에 올리고는 모두에게 트위터로 알렸다. 그 다음엔 이들을 텔레그램 단체 채팅방에 초대해 정책을 알렸다”고 말했다. 하바비는 “나는 사람을 만날 시간도 없을 정도로 소셜미디어에서 모든걸 해 냈다. 그리고 이것은 가장 빠르고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우리 아랍인들은 항상 수다를 떨기 좋아하고, 나는 ‘액션 걸’이다”고 말했다.
12일 선거 결과 979명의 여성 후보 중 20명이 당선됐다. 유권자로 등록한 여성은 13만 637명으로, 135만 5,840명의 남성유권자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성과다.
사우디 여류작가 마하 아킬은 “나는 여러 지역에서 여성들이 이긴 것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오직 한 명이나 두 명의 여성 정도만 당선될 것이라고 여겼다”며“이는 앞으로 더 많은 변화가 올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당선자 20명은? 학자, 활동가, 사업가
당선된 여성들은 대부분 이미 사우디 지역사회에서 존경 받는 학자이거나 활동가, 사업가였다. 살마 빈트 하잡 알오테이비는 두 아들을 둔 여교사로, 사우디에서도 특히 보수적인 메카의 마드라카 지역에서 당선됐다.
제다에서 출마한 라샤 헤프지는 38세의 젊은 여성 사회복지사로, 홍수 때 구호 작업을 하며 정치를 시작했다. 대도시 제다가 상대적으로 ‘리버럴’한 곳이었음에도 헤프지는 “어떤 지방의원들은 여성을 만나주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인 남성들은 그들의 네트워크를 가지고 서로를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들을 ‘우리를 위해 투표하라’고 설득하는 것 큰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슬로건은 ‘이제 시작했고, 앞으로도 계속된다’였다. 그는 당선 뒤 SNS에 감사의 글을 올리고 ‘싸움은 이제부터’라고 알렸다.
저명한 생화학자이자 제다의 상공회의소 부회장인 라마 알 술라이만도 제다에서 승리했다. 그는 “우리는 샤리아 율법에 관계없이 우리가 진보를 위해 필요하다 믿었던 어떠한 지점에 도달했다”며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의 수준을 개선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슐라이만의 캠페인 슬로건은 ‘그래요, 우리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요!’였다.
리야드에서 건축을 가르치며 이곳에서 당선된 하이파 알 하바비는 “나의 동기는 페미니스트 자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서 변화를 만들 의원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우디 사람들은 이곳에서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공공서비스와 선거가 이뤄지는지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무료 서비스에 익숙해졌다면, 이를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하지만 석유가 없다면 우리는 제3국가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선거가 사회개혁 위한 기폭제 될까
역사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사우디가 갈 길은 아직 멀다. 일단 여성들이 확보한 20석은 이번 지방 선거에서 선출된 2,100석의 1%에 불과하다. 지방 의회의 소관도 정책 기획과 개발, 지역 서비스 등에 제한돼 있으며 왕실과 같은 민감한 문제를 다루는 것은 금기나 다름없다.
발라디 이니셔티브의 코디네이터로 일했던 역사가 하투 알 파씨는 “나는 선거 승리가 궁극적 목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는 시민이 되기 위한 권리이며, 나는 이를 터닝포인트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발라디 이니셔티브는 지방 선거에서 얻은 승리를 더 큰 개방을 위해 활용할 계획이다. 지방의회 의석에서 2,100석은 선거로 채우고 이 외 국왕이 지명을 승인한 1,050명이 추가된다. 발라디 이니셔티브는 이 중 500석을 여성으로 채우라고 요구하고 있다.
카티프의 활동가 나시마 알 아다는 “많은 사람들이 선거는 단지 정부가 개혁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뭘 원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우리가 이를 변화를 위해 사용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세계화와 소셜미디어는 전 세계가 연결돼 있다는 걸 의미하며 변화는 계속될 것이다”라며 “오직 하나의 질문은 얼마나 이것이 오래 걸릴까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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