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내장 질환으로 실명 위기 수형자
시각장애 전담 교도소 이감 요청에
“현재 수감된 곳이 지체장애 전담”
법무부, 옛 사고 근거로 엉뚱 답변
부작위 위법 확인 소송 냈지만
장애인 수형자 치료 사실상 어려워
“죄 지은 사람은 치료받을 권리도 없습니까? 출소해서 어떻게 생활하란 것인지요.”
전남 순천교도소에서 지난 11일 이성진(가명ㆍ53)씨를 면회한 딸 A씨는 아버지의 ‘죄’를 말하다 울먹였다. 이씨는 감옥에서 녹내장 질환으로 오른 쪽 눈에 이어 왼쪽 눈도 실명할 위기에 처했다. 같은 방 수형자의 도움 없이는 간단한 메모는커녕 자신의 속옷 빨래도 할 수 없다. 이제 그에게 ‘죄값’이란 남들처럼 수감되는 게 아니라 혼자서는 생활할 수 없다는 것이란 의미가 더 컸다. 물론 우리 법은 수감자도 “장애 정도에 따라 처우를 배려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씨의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었다.
이씨는 경남 김해시의 한 병원에서 원무부장으로 일하면서 허위 진료기록을 작성해 보험금을 타낸 혐의(사기 등)로 지난 해 5월 구속됐고, 올해 2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 형이 확정됐다. 수년 간 백내장 질환을 앓아온 그는 2심 선고를 앞두고 병세가 심해져 녹내장 수술을 받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창원교도소에서 상태가 계속 악화되면서 한달 후에는 우안(右眼) 실명 및 좌안(左眼) 안압(19mmHg) 이상 통보가 나왔다. 그때도 시설 내 진료가 어려우면 외래진료를 받게 해 달라는 가족청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이씨는 법무부가 장애인 전담 수용시설로 지정한 순천교도소로 옮겨져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교도소 상황을 파악한 가족들은 더 큰 불안에 휩싸였다. 순천교도소는 올 상반기에 두 번 장애인 처우개선을 위한 ‘수용자 노래교실’ 프로그램을 운영한 게 전부일 만큼 무늬만 장애인 전담 시설이었다. 이를 관할하는 광주지방교정청은 결국 지난 달 25일 “순천교도소는 장애인 전담 교정시설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에 가족들은 시각장애인 전담 교도소로 옮겨달라고 요청했으나 법무부의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법무부는 “이씨는 지체장애 2급으로 해당 장애 처우에 적합한 교정시설(순천교도소)에 수용되어 있다”며 이씨 측의 요청이 근거가 없다고 일축한 것이다. 광주교정본부의 답변과 달리 순천교도소를 지체장애인 전담교도소로 분류하고 있던 셈이다. 더구나 법무부는 이씨의 실명 문제가 아니라 그가 20여년 전 사고로 다친 다리의 장애 문제만을 언급했다. A씨는“탄원서를 계속 썼지만 법무부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심각하게 파악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이씨와 가족은 이달 21일 수원지법에 법무부를 상대로 부작위에 의한 위법 확인 소송을 냈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법무부가 장애인 수용자의 처우를 배려하고 알맞은 재활치료 프로그램을 시행ㆍ관리해야 하는데 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씨가 소송에 승소한다 해도 온전한 치료를 받기까지 갈 길은 멀다. 법무부는 여주교도소와 청주교도소를 시각장애 전담 교정시설로 지정하고 있지만 점자 교육프로그램만 운영할 뿐 의료기반은 전무하다. 여주교도소 관계자도 “시각 전담시설로 분류된 건 맞지만 시각장애 관련 전문 의료진은 없다”고 인정했다.
장애인 수감자 처우에 대한 비판이 일면서 법무부 교정본부는 일부 교도소에 장애인종합재활센터 등을 개원한 상태다. 그러나 취업 및 창업, 미술치료 등에 초점을 맞춰 실질적인 치료프로그램은 마련돼 있지 않다.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 운영되는 장애인 관련 재활ㆍ치료 프로그램은 순천교도소가 순천의료원 재활의학과를 통해 진행중인 하반신 마비 수용자 재활치료가 유일하다.
조원일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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