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작가 김희천(27)은 엄청난 2015년을 보냈다. 1월 서울 상봉동 반지하에서 열린 영상작품 ‘바벨’ 상영회가 시작이었다. ‘바벨’은 일민미술관 ‘뉴 스킨’전에서 여름을 보낸 후 9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아시아 필름 앤 비디오아트 포럼’에 초청됐다. 건축을 전공하고 처음 영상작가로 나선 그가 순식간에 미술계에 이름을 알린 한 해였다. “우연히 전시 기회를 얻어 여기까지 왔다”는 그는 ‘바벨’ 3부작의 최종 작품인 ‘랠리’를 서울 영등포동 커먼센터에서 상영 중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한 김희천이 ‘바벨’을 만들게 된 계기는 2014년 아버지의 사고사였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도 저는 졸업을 준비하며 도시 리모델링 계획을 짜야 했습니다. 그런 제 처지를 자조하는 마음으로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바벨’에서 김희천은 3차원으로 구현된 서울의 지도를 여행하며 “빨리 2014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내레이션을 흘린다.
전체 3부작의 핵심 주제는 피상적인 인간관계다. 김희천은 “도시 리모델링 프로그램은 모델의 유효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3차원으로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가상의 사람들이나 현실의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겐 비슷해 보였다”고 말했다. 일민미술관에서 전시한 2부 ‘소울식/페깅/에어-트워킹’도 비슷한 취지다. 사진으로 찍은 물건들을 3차원으로 변환한 영상인데 표피만 있고 내부는 텅 비어 있는 모습이다.
‘랠리’는 서울 여기저기에 널린 유리파사드(건물의 겉면을 유리로 덮은 건축)에 주목한 작품이다. 유리파사드는 건물 안팎을 뚫어보지만 본질은 결국 칸막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김희천은 “유리를 통해 서로를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유리파사드의 대표적인 예로 영상에 등장하는 잠실 롯데월드타워는 온 서울을 반사하는 거울이자, 동시에 ‘불통의 도시’의 상징이다. 김희천은 “뭔가 큰 변화가 있지 않으면, 세상은 그저 이 상태로 서서히 나아갈 것 같다”고 비관적인 예측을 던졌다.전시는 1월 24일까지. 070-7715-8232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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