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법 집행 얘기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다. 우리말로는 제법 유식한 표현으로 보이지만 영어로는 의외로 간단하다. ‘No penny, no pardon.’ 이미 16세기에 스코틀랜드에서 쓰인 기록을 보면 500년 전부터 불공정 부당함에 대한 용어가 있었던 것이다. ‘한 푼이라도 없으면 사면도 없고 면죄도 없다’면 결국은 돈이 있어야 법 혜택도 받는다는 뜻이고 그렇게 되면 사회는 조용해질 수가 없을 것이다. 16세기에는 ‘No penny, no paternoster’, 즉 ‘돈 없으면 기도도 해주지 않았다’는 말이 나돌았고 ‘생전에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천당에 가서 왕관도 없다’(No cross, no crown)는 말도 유행했다. 오늘날 교회에 가면 헌금이라도 많이 해야 대접받는 세태가 연상되는 말이다.
일부에서는 ‘유전 무죄’ 어구를 ‘One law for the rich, and another for the poor’(부자를 위한 법이 따로 있고 가난한 사람에 대한 법이 따로 있다)고 번역하지만 ‘No penny, no pardon’만큼 전달력이 좋지는 않다. ‘No X, no Y’ 패턴의 어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호소력 있고 메시지 각인 효과가 뛰어나다. 병원에서 치료를 해주지 못하면서 돈만 받는 경우 ‘No cure, no pay’라고 말하는 것이나 요즘 학생들이 ‘시험이 없어지면 줄 세우기도 없어진다’는 ‘No test, no loser’같은 어구도 이런 효과를 노리고 나온 말이다.
미국에서 이와 유사한 말이 나오게 된 때는 1750~80년 독립전쟁을 전후한 때다. 미국 독립전쟁 때에 나왔던 ‘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을 보면 ‘No X, no Y’ 대신 ‘No X without Y’ 구조를 사용했을 뿐 내용은 똑같다. 영국이 미국의 동북부 13개 지역을 식민지로 하고 사탕조례(Sugar Act)나 인제세 조례(Stamp Act), 차 조례(Tea Act) 등으로 세금을 징수하려 하자 미국의 대표가 영국에 가서 ‘발언권이 없는 상황 속에서 왜 우리가 세금을 내야 하느냐’는 뜻으로 ‘대표 없이는 과세도 없다’고 맞서게 되었고 이는 곧 영국이 매사추세츠주를 공격하여 독립운동이 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자식 상팔자’라는 거창한 문구도 영어에서는 ‘No children No cry’이고 여자 없으면 속이 편하다는 말도 ‘I don’t have a woman, that’s why I don’t cry’라고 말하는 것보다 ‘No woman No cry’라고 말한다. 미국 고속도로에 있는 ‘No Latinos, No Tacos’홍보를 보면 우리의 ‘No Koreans, No Kimchi’가 연상되면서 ‘Koreans=Kimchi’등식이 단박에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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