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에서 의료기기 제조업체를 운영하던 김모(44)씨는 사업이 어려워지자 지난해 2월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 2013년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임금과 퇴직금 2억4,000만원을 받지 못한 직원들을 발을 동동 굴렀지만 김씨는 이미 출국한 뒤였다. 임금체불 때문에 수배 중(근로기준법 위반)인 사실을 모른 채 태국에 있는 자녀의 생일을 축하하려다 인천공항에 입국한 김씨는 지난 12일 체포됐다. 앞서 올해 4월에는 직원 399명의 임금 13억3,000만원을 고의로 떼먹은 한 전문 건설업체 대표 홍모(48)씨가 구속됐다. 그는 원청이 지급한 공사대금 13억원 중 9억원을 채무변제 명목으로 친형에게 줬고, 유흥비로 1억원을 탕진했다. 전국에서 23차례 임금 체불 신고를 당했지만 홍씨는 오히려 “밀린 임금은 원청에서 대신 해결해 줄 것으로 생각하고 잠적했다”며 당당하게 말했다
올해도 체불임금이 1조원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총 1조1,884억원의 체불임금이 발생했다. 연말까지는 1조2,9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 수는 29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올해 11월까지 체불임금 총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 줄었다. 하지만 연간 체불임금 총액은 2012년 1조1,771억원, 2013년 1조1,929억원, 2014년 1조3,194억원으로 매년 1조원을 넘는 등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한 달에 1,000억원 이상의 체불이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에서 4,335건이 발생해 전체의 36.5%를 차지했다. 이어 건설업 2,275건(19.1%), 도소매·음식숙박업 1,544건(13%), 사업·서비스업 1,179건(9.9%) 순이었다. 사업장 규모별로는 5~30인 미만 사업장이 4,916건(41.4%)으로 가장 많았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도 3214건(27%)이 발생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서 임금체불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정지원 고용부 근로기준정책관은 “체불임금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리구제지원팀 인력을 현재 140명에서 187명으로 보강할 방침”이라며 “내년 경기 전망이 좋지 않아 임금체불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상습체불 사업주에 대해 엄정히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용부는 올해 임금체불 신고사건 5만342건을 사법처리했으며, 재산을 은닉하거나 개인채무 변제에 악용한 체불사업주 22명을 구속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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